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 / 추억에 욕망을 뒤섞으며 / 봄비로 잠든 뿌리를 일깨운다”라고 읊으면서 “겨울은 오히려 /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 주었었다. /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다”라고 봄을 이야기했다. 시인이 생명이 움트는 봄의 기운을 잔인함에 비유한 것은 아마도 엄동의 겨울을 지내온 인내의 고통을 표현하고자 한 의미였으리라. 문명의 모순에 실망한 시인은 역설적으로 봄 대신 겨울을 찬미했지만 봄만큼 인간의 감성을 풍성하게 하는 것도 없다. 그래서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은 목소리와 각종 미사여구를 동원해 봄을 노래했다.
이런 봄의 화신(花信)이 20여일이나 일찍 왔다. 덕분에 시야가 머무는 산마다 들마다 울긋불긋 꽃대궐이다. 홀로 단아하게 봄을 맞이하던 목련은 벌써 하얀 옷깃을 여미듯 꽃잎을 떨구고 있다. 따라서 올 것 같지 않던 봄도 어느덧 여름을 향해 성큼 달아난 느낌이다.
예년 같지 않은 계절 탓에 울상인 곳도 생겨났다. 벚꽃 축제를 계획했던 지자체들이다. 이런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일찍 꽃망울 터트린 벚나무의 자태는 아름답고 화사하기만 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봄이 희망과 부활의 계절임을 증명하고 있다.
봄볕이 따사롭고 연둣빛 새순을 내미는 신록이 싱그럽지만 이를 느낄 겨를조차 없는 사람들도 있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출마예상자들이다. 빡빡한 선거 일정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는 바람에 언감생심 봄나들이는 꿈도 못 꾼다. 선거사무소를 개설하고 현수막을 내걸고 저마다 지역의 적임자요 상머슴임을 자처하고 다니느라 계절 자체를 잊은 지도 오래다. 꽃잎이 흐드러지는 사이 공천경쟁은 치열해져 가고, 상대방 견제와 흠집 내기는 봄바람을 타고 곳곳을 넘나든다. 또한 출마예상자의 이름과 슬로건을 새긴 명함도 꽃잎만큼 무수히 흩날린다. 하지만 이들 중 절반이상은 자의반 타의반 4월 중 출마를 접어야 한다. 여당은 경선이 예고되어 있고 야당도 내부정리가 계획되어 있어서다. 꿈을 접어야하는 그들에게는 4월이 진정 ‘잔인한 달’일지도 모른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