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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람]영화 <집으로 가는 길>

 

‘집’이란 무엇인가? 집은 생존에 필요한 생활공간이기도 하지만 ‘영혼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을 보던 날 필자의 시집 『해남 가는 길』을 떠올렸다. 필자에게 해남은 고향이고 영혼의 안식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도연이 주연을 맡은 <집으로 가는 길>(감독 방은진)은 동정 없는 세상에 사는 가난한 이웃들과 공무원들의 안일한 얼굴들을 만나게 된다. 외로운 사람들의 희망찬 얼굴을 그리는 이 영화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남미 가이아나에서 프랑스로 보석 원석(原石)을 운반하는 일을 맡았다가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마약 운반범으로 검거된 한 주부의 실화를 영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이 주부는 외교부와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의 부주의와 무관심 때문에 재판도 받지 못한 채 대서양의 외딴섬 마르티니크 교도소에 갇혀 있다가 765일 만에 돌아온다. 오래 전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로도 소개되어 꽤 알려진 이 이야기를 영화로 또 봐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흥행스타 전도연의 민낯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전도연은 눈가와 입가의 잔주름 하나라도 그냥 못 보고 넘기는 이 세상에서 당당하게 민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전도연은 억울함과 처절함을 전달하기 위해 울거나 소리 지를 필요가 없다. 피로와 고독이 켜켜이 쌓인 듯한 얼굴로 카리브 해를 황망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오랜 수감 생활로 짓이겨진 한 인간의 정신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전도연은 인터뷰에서 “나에게 그렇게 많은 표정이 있는 줄 몰랐다”고 했을 정도다.

또 그는 “불쌍하고 슬픈 인간이 아니라 그 와중에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인간을 연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 <밀양>이나 <하녀>에서도 그랬듯이 그는 핍박받고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속내에 있는 차돌처럼 단단하게 뭉친 강인함을 순간 드러낸다. 재판을 받기 위해 프랑스어를 배우고 한국의 가족들에게 담담하게 편지를 쓰는 그의 몸짓은 재판장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를 프랑스어로 이야기할 때 관객의 시선을 더 모은다.

영화 <소원>의 주제가 ‘어린 소녀의 짓밟힌 잔혹사’라면, 이 영화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데서 더 애정이 간다.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삶의 여행에서 궤도를 이탈해 고통받을 수 있다. 지금 어딘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굶주려 있고 치열하고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눈물만 흘리며 스크린을 떠날 게 아니라 서로 손을 맞잡게 한다. 그만큼 여운이 큰 영화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필자는 아쉬움을 느꼈다.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관객들이 영화의 앤딩 장면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지키지 않아서였다. 영화는 배우와 감독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들의 이름은 앤딩 장면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자막에 올라간다. 이 영화에는 어떤 사람들이 참여했는지를 무시한 채 서둘러 나가버리는 관객들, 시나리오작가이기도 한 필자는 그런 모습이 항상 아쉽기만 하다.

“당신이 없었으면 결코 버틸 수 없었을 거야. 그래서 고마워요. 그래서 미안해요.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돈을 벌겠다는 욕심과 무지로 인해 죄를 지었습니다. 2년 동안 죄에 대해 용서를 빌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이 또 있습니다. 아내 없이 지낸 남편, 엄마 없이 지낸 딸입니다. 돌아가서 죄를 갚고 싶습니다. 제발 제 가족에게 아내와 엄마를 돌려주세요. 저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 영화에서 중심축은 단연 배우 전도연이다. 영화 <카운트다운> 이후 2년의 공백기를 거치며 그의 연기력은 더욱 짙은 색을 더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마약 소지라는 중죄까지 뒤집어쓰고, 저 멀리 사랑하는 남편과 어린 딸을 위해 하루하루 견디어내는 힘없는 한 여인의 삶을 완벽히 연기했다. 아름다운 여배우의 민낯이 무엇인지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또 한 번 증명해 보였다. 그래서 이 영화는 지난 한 해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로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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