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의 과학화가 여론조사다. 하지만 과학을 동반한 여론조사도 늘 공정성에 도전을 받는다. 누가 질문을 하는지, 어떻게 대상자를 모집했는지, 어떤 단어를 선택했는지에 따라 결과가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1936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루스벨트와 공화당의 랜던 후보가 맞붙었다. 선거를 앞두고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지가 무려 1천만명에게 설문지를 보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유권자 4.5명 중 1명꼴이라 오차가 거의 없을 것으로 확신하며 의기양양하게 발표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 그 자체였다. 조사에선 랜던이 57%의 지지율로 이긴다는 예상이 나왔으나 뚜껑을 열자 루스벨트가 62%를 득표해 당선됐다. 선거사상 최대 표차라는 기록도 세웠다. 부유계층만을 참여시킨 잘못된 여론조사 표본 추출이 이유였다. 여론조사는 통계학이 빚어낸 과학적 산물인 것은 틀림없지만 이처럼 통계에 숨어있는 허점 또한 극명하게 보여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생명인 정치판에서 여론조사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항목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또 깊이 간여하며 거의 모든 선거에서 위력을 떨친다. 후보자를 선정하고, 선거 전략을 수정하기도 한다. 선거전 판세를 읽는 데도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 특히 요즘은 출구조사 등 조사 기법의 발달로 영향력이 더욱 강해져 정치판의 ‘일희일비’를 주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정치판의 여론조사 결과물인 지지율은 믿어도 되는 것인가. 많은 전문가들은 ‘그저 추이를 살펴보는 참고자료’일 뿐이라고 말한다. 여론조사에는 ‘무응답도 있어서’라는 게 이유다. 브래들리 효과라는 것이 있다. 198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흑인 후보 톰 브래들리가 백인 후보를 누르는 것으로 조사됐으나 결과는 달랐던 데서 유래했다. 유권자들이 인종 편견을 감추기 위해 거짓 응답했던 것이다.
6·4지방선거 60일을 앞둔 지난 5일부터 당(黨)이나 예비후보자 명의의 여론조사가 금지됐다. 그러나 이외의 기관이 조사한 결과는 아직 언론에 발표할 수 있다. 따라서 후보 지지율 중심의 경마식 보도는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어설픈 여론조사가 넘쳐나지 않길 기대한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