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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일칼럼]4·19 민주혁명과 한국교회

 

1960년의 4·19 민주혁명은 미완의 혁명이었습니다. 이승만 정권의 하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나, 그 후, 5·16 군사 쿠데타로 독재가 시작되었고, 거의 30여년 동안 한국사회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억압하는 권위주의 정권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록 실패한 혁명이었지만 4·19는 학생, 청년이 주체가 되어 정권을 교체한 최초의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1968년에 이르러서야 학생혁명이 시작되었고, 이른바 68세대로 불리는 당시 혁명에 참여했던 학생세력이 그 후 유럽 사회의 급진적 변화에 기여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역사에서 4·19 혁명은 청년, 학생집단에게 역사변혁의 주체의식과 강한 책임의식을 주었으며, 그 후 박정희 개발독재에 대한 저항과 민주화, 인권운동의 역사적 전거가 되었다는 점에 그 의의를 갖는다고 할 것입니다.

4·19 민주혁명은 한국 교회에게도 큰 도전을 주었습니다. 한국교회가 무비판적으로 지지하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에 개입했던 이승만 정권이 부정선거와 민주혁명으로 순식간에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해방 후, 기독교적 건국이념으로 새 나라를 만들려던 이승만의 시도가 장기집권 의욕과 부정부패로 막을 내렸고, 한국교회 역사상 처음 있었던 정치권력과의 유착관계도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혁명으로부터 무엇을 배웠을까요? 다행인지 모르지만 혁명의 화살이 교회에까지 미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박정희의 군부 쿠데타가 아니었으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모릅니다. 한국교회는 미처 혁명으로부터 자신을 반성할 시간도 없이, 새로운 군사정권 하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을 뿐입니다. 지극히 일부의 지도자들만이 이승만 정권과의 유착관계를 자성하는 목소리를 냈을 뿐, 한국교회 다수는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한국교회가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을 하면서 역사에 책임적으로 참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은 박정희의 한일협정비준반대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인 사회참여는 박정희의 3선 개헌시도에 맞서 1970년대부터 전개된 반독재, 민주화 운동, 인권운동, 도시빈민선교 등에서 구체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운동과정에서 청년, 학생들의 참여가 활발했던 것도 어찌 보면 미완의 혁명, 4·19 혁명을 완성하려는 의지의 발로였는지 모릅니다. 한국교회는 4·19 민주혁명을 교회가 권력의 불의에 침묵하면서 역사적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오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국가권력에 대하여 교회는 끊임없이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 하며, 유착이 아니라 비판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스도교 복음은 역사 안에서 구원의 능력이 되어야 하며, 교회의 역사적 책임은 희생자들의 편에 서는 일에서 성취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역사 속에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전에 먼저 역사의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교회는 역사를 두려워하는 교회이며, 언젠가 역사로 기록될 현실에서 하나님의 말씀에만 복종하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것이 어떤 형태의 권력이건(정치권력이건 경제권력이건, 교권이건), 누구의 권력이건(독재정권이건 민주정권이건) 그에 야합하거나 편승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권력 주변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에 관심을 갖거나, 사회적 위상을 과시하기 위해 권력층을 이용해서도 안 됩니다. 언제나 사회의 밑바닥에서 민중의 편에 서는 것만이 오용되고 악용되고 남용될 수 있는 권력, 그 자체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원한 혁명가로 말하는 것은 바로 예수께서 권력의 속성을 아시고 권력을 경멸하는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4·19 민주혁명, 미완의 혁명은 지금도 교회가 어디에 서야 하는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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