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고추 한 개에 들어있는 비타민C는 귤의 네 배나 된다. 풋고추가 익어가면서 새빨갛게 바뀌는 것은 붉은색인 캡산틴(capsanthin)이란 색소가 생겨나서다. 고추가 매운맛을 내는 까닭은 고추의 속명에서 따온 캡사이신(capsaicin)이란 물질 때문이다. 사실 고추의 매운맛은 통증으로 느끼는, 다시 말해 구강 점막을 자극할 때 느끼는 타고 아픈 듯한 통증이다. 그래서 통각이라고도 부른다. 고추가 매운맛을 내는 또 다른 이유는 세균, 곰팡이, 바이러스 등 다른 미생물이나 곤충에 먹히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자기방어물질’인 것이다.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과 삼국시대라는 두 설이 있으나 아직 정리되지 않고 있다. 유래가 무엇이든 고추는 풀이 아니라 가지과 나무다. 고추농사는 ‘거저 얻는 것 없다’고 할 정도로 보긴 쉬워도 웬만한 정성과 노력 없이는 재배가 어렵다. 큰 고추 하나에 씨앗은 150여개쯤 들었다고 한다. 한 그루에 70~80개의 고추가 달리니, 그루당 1만1천여개의 씨앗이 생긴 셈이다. 그래서 선조들은 아들을 낳으면 다산(多産)의 상징 고추를 금줄에 달아 대문 앞에 내걸었나 보다.
우리 고추는 여러 품종 중에서도 특히 ‘청양’(경북 청송과 영양의 준말)고추를 으뜸으로 친다. 국민 전체가 즐기는 고추다 보니 1인당 연간 소비량도 4㎏으로 세계 최고다. 12년 전 충북 음성에서 고추농사만을 지어온 이종민씨의 이야기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화제가 됐었다. 양과 질 면에서 우수한 명품고추를 생산하겠다는 그의 25년 노력이 고추 장인(匠人)으로 거듭나게 했다는 성공담이 주된 내용이다. 고추박사 이씨는 10여년 후인 지난해엔 1회 대한민국 예술문화인 대상도 받았다. 고추 맛을 향상시킨 공로라고 한다. 이씨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이 같은 노력으로 우리의 고추맛과 질은 세계 으뜸이다.
엊그제 중국산 고추를 국내산으로 둔갑시키려 한 밀수업자가 인천세관에 적발됐다. 수량만도 24t에 이른다. 우리 국민이 하루 동안 먹는 분량의 80%에 해당한다. 고추 밀수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근절을 위해 단속의 고삐를 더욱 바짝 좨야겠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