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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고목이 뿜어내는 봄

 

사람들은 흔히 계절의 시작을 봄이라 말한다. 계절의 처음이 봄이라는 정의를 내린바 없지만 봄을 계절의 시작으로 생각하는 건 아마 봄에 시작되는 식물의 재생 또는 움이 트는 시각적 효과 때문이 아닐까. 이즘 봄이면 화사하게 피어오르는 꽃, 노르스름한 주둥이 내미는 새싹들로 인하여 활기가 넘친다. 그 싱싱한 싱그러움에 사람들 또한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펴고 산으로 들로 꽃놀이를 나가기도 한다. 봄은 그렇게 자연으로부터 또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뿌리를 내린 어린 나무가 막 잎을 피워내는 그 생기어린 오만함, 개나리 울타리 넘치게 재재거리는 꽃잎들의 간들거림, 흘러내리는 꽃비에 가슴 동동거리게 하는 벚꽃 춤사위와 밤새 풀어헤친 수수꽃다리 참을 수 없는 향기까지. 달을 품은 밤이면 그 밤으로 해를 띄운 낮이면 그 햇살로 봄은 또 나날이 다른 봄을 해산한다. 그렇게 태어나는 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다.

태어나 걸음을 떼기 시작하고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이 되고 황혼기를 거쳐 죽음을 맞기까지 봄여름가을겨울이 공존하는 사람들의 삶. 마치 사계절을 순서대로 맞고 보내는 듯하지만 사람들의 삶에서도 평생에 걸쳐 다년생 식물과 같이 숱한 봄을 맞고 보내고 또 맞는 재생의 봄이 있다. 나이가 들면 ‘이미 난 나이가 들어서 삶을 정리할 때가 되었어’라는 자기 체념과 함께 서서히 삶을 정리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하며 팔순이 넘은 노년에도 새로운 자기 삶의 활력소를 위해 각종 취미생활을 하며 끊임없이 봄을 재생해내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주말 매년 시기를 놓쳐 볼 수 없었던 속리산 벚꽃의 만개한 순간을 마침내 볼 수가 있었다. 수십 년 보아온 내가 본 벚꽃 중에 최고의 벚꽃은 바로 속리산 벚꽃이다.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른 보통 벚나무들과 달리 햇수를 가늠할 수 없는 묵은 나무 둥치는 모두 중심에서 몇 개의 중간 기둥이 갈라져 뻗어있고 물길을 따라 죽죽 흘러내리듯 뻗은 가지들의 자태는 마치 그 옛날 풍유를 아는 선비 같다. 가지마다 소담하게 피워 올린 벚꽃이 어우러져 물길을 따라 환하게 후광을 비추는 그 고고함이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멋, 아름다움이었다. 그렇게 오래된 벚나무도 해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 속의 또 다른 봄을 캐내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벚나무에서 느낄 수 없는 고목이 뿜어내는 절제할 줄 아는 아름다움이 담겨 있어 더 품위가 있었다.

사람들의 봄은 젊은이들만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자연 속에서 해묵은 풀꽃과 나무들이 때를 기다려 함께 봄을 키워내듯 고령화 사회 속에서 우리 사회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장년, 노년의 어른들도 모두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대접받기만을 기다릴 게 아니라 변화되는 사회에 함께 적응하며 젊은이들 속에서 그들만의 우직한 에너지와 삶의 지혜를 곳곳에서 꽃피울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봄은 그렇게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문 두드릴 줄 아는 사람들로 인하여, 햇살을 향해 끊임없이 움 틔울 줄 아는 어린 싹들의 용기로 인하여 다가오는 것이다. 연륜이 있어 더 아름답게 보이는 속리산 벚꽃처럼 우리 삶속에서 어른들이 피워내는 고고한 꽃들과 젊은이들이 피워내는 활기찬 봄꽃이 함께 어우러질 때 그것이야말로 진정 따뜻한 봄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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