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큰 특징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슬픔 때문에 쏟아지는 눈물은 더욱 막을 수 없다. 크게 웃거나 하품할 때 얼굴 근육이 눈물샘을 자극해 흐르는 눈물 역시 어쩌질 못한다. 그래서 울음만큼 인간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신체언어도 없다고 한다. 슬프거나 기쁠 때 저절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며 함께 가슴이 미어지고 설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흘리는 눈물도 여러 가지다. 양파를 깔 때도 눈물이 난다. 이는 외부 자극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신체 방어적으로 분비되는 눈물은 느낌도 없다. 그런가 하면 진심인지 아닌지조차 분간하기 어렵다는 ‘여자의 눈물’도 있다. 연약함의 대명사로 남성의 흥분과 공격성을 누그러뜨리는 무기다. 반대로 남성이 눈물을 흘리면 나약함으로 상징되어 왔다. 자신이 태어났을 때와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나라가 망했을 때 등 일생 세 번만 울 수 있는 것이 남자라고 했을 정도다.
정치에서는 눈물의 통치학이란 게 있다. 눈물어린 호소로 정국의 고비를 넘긴다는 뜻이다. 삼국지에서 한나라 유비가 제갈량을 삼고초려하며 흘린 눈물이나 히틀러가 부하들의 충성심을 자극하기 위해 흘린 눈물 등이 그것이다.
슬픔을 억지로 참고 있으면 가슴 속 응어리는 커진다. 이럴 때 통곡하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다 울다 지쳐 콧물과 뒤범벅된 눈물을 훔치고 나면 마음이 다소 후련해지기도 한다. 소위 정서적 눈물이라 불리는 이러한 눈물은 평상시 눈물과는 농도와 성분이 다르다. 특히 화가 났을 때 나오는 눈물은 더 짜다. 또 슬플 때의 눈물엔 단백질이 20% 더 많이 들어있다. 실컷 울고 나면 속이 시원한 것도 이런 쓸데없이 생긴 화학물질이 몸 밖으로 나와서다.
슬픔이나 분노 등은 감추지 않고 드러내야 치유되는데 눈물은 바로 그런 내면의 아픔을 밖으로 끌어낸다는 뜻일 게다. “눈물이 없는 자의 영혼에는 무지개가 뜨지 않는다”는 인디언 경구가 있다. 극복하기 어려운 슬픔을 당한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로 자주 인용된다.
울부짖는 통곡의 눈물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찢는다. 세월호 실종자와 희생자 가족들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도 이랬다. 하지만 이젠 이런 눈물마저 말라간다. ‘힘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고통스럽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