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길 옆에 산 것도 아닌데 흥부는 자식이 열 셋이었다. 식구 합이 열다섯인 셈이다.
벅차기도 했겠다. 그 입들에 풀칠하기가. 흥부 어깨에 짊어진 하중이 오죽했겠나, 싶다.
그러던 어느날, 흥부, 관청을 찾아간다. 나랏곡식이라도 한 섬 얻어다 식구들 먹일 생각에서였다.
이방에게 여쭙는다.
“환곡이나 좀 얻어 먹으려는데 어떨는지요?”
이방 왈(曰), “가난한 백성이 막중한 나랏곡식을 어찌 달라고 하는가?” 그러더니 뜸금없이 묻는다. “그건 그렇고 연 생원은 매를 맞아 보았는가?” 하더니 사설을 푼다. 곡식을 얻으려 하지 말고 억울한 송사(訟事)에 연루된 김 부자를 대신해 매를 맞아라. 그러면 돈 30냥은 벌을 수 있다. 어떤가? 뭐 이런 속삭임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그깟 매쯤이야, 생각한 흥부 덜컥 승낙하고 선금으로 닷냥을 받아 챙긴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 사실을 말하니 흥부 아내 울며 말한다.
“아이고 이 양반아 매품팔이가 웬말이오! 그 사람이 살인죄를 지었는지 어찌 알고 그런 말을 하시오? 잘못했다가 곤장 맞고 죽을지도 모르는데 당장 거절하고 오시오. ”
너무 완강했다. 그러나 돈 삼십냥이 어디 뉘집 강아지 이름인가. 아내를 달래기 시작한다.
“여보 마누라, 쓸데없는 이 볼기짝 삼십 대만 맞으면 돈 삼십 냥 생긴다오. 열 냥은 고기 사서 원기를 회복하고 열 냥은 쌀을 사서 집안 식구 포식하고 열 냥은 소를 사서 잘 키워 아들 장가들여 그놈이 아들 낳으면 우리에게는 손자 되니 그 아니 경사인가.”
그래도 안 통했다. 잘못되면 열세 명 아이는 어찌 키우나 싶은 것이 아내 마음이었다.
흥부 꾀를 내어 아내에게 거짓으로 안 가겠다, 달래고 그 길로 관아를 찾아간다.
자식 먹일 생각에 죽을지도 모를 길을 볼기 흔들며 떠난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사지(死地)를 불사하는 부모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하물며 자식 먼저보낸 마음이야 말해 무엇하랴.
부양할 가족이 많아서 매품을 판 것도 아닌데 마음에 온통 푸른 멍이다.
죄인은 따로 있는데 국민이 죄인된 4월, 그 계절이 가고 있다.
/최정용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