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길원옥·안점순 할머니가 모처럼 활짝 웃었다. 지난 3일 오후 수원시청 앞 올림픽 공원에서 열린 수원 평화비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다. 이 분들은 우리 근대사의 큰 비극 중 하나인 위안부 문제의 피해 당사자들이다. 행사 내내 굳은 표정이었던 할머니들은 소녀상을 덮었던 천이 걷히고 눈부신 햇살 아래 평화의 소녀상 모습이 드러나자 푸른 하늘처럼 활짝 미소를 지었다. 수원평화비는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간 여성들의 맺힌 한을 풀어주고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후세에 전하고자 수원시민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이다.
또 우리 근대사의 많은 비극 중 하나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적 경각심을 높이고 일본에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 수원시민들은 지난 3월 1일 수원 평화비 건립 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킨 이래 수원 평화비 건립을 위한 기금 마련 평화 콘서트, 수원평화비 건립 기금 마련 자선 바자회, 수원 평화비 영화제, 서명 운동, 모금함 설치, 수원 청소년 평화나비 서포터즈 활동 등을 펼쳤다. 이 결과 우려와는 달리 6천명의 시민과 수원시 공직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 처음 목표로 한 모금액 7천만원을 훨씬 넘는 9천만원이 걷혔다.
이날 수원평화비 제막식에서 눈길을 끌었던 행사는 평화비 제막을 위한 모금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름과 그간의 모금 및 서명 경과와 결과를 도자기 안에 담아 소녀상 옆에 묻어 미래로 보내는 의식인 타임캡슐 봉안식이었다. 또 이날 행사 마지막 순서로 청소년들에게 바른 역사관과 가치관을 심고 미래의 평화를 가꾸어갈 수원 청소년 ‘평화나비’ 발대식도 의미 깊은 행사였다. ‘오늘의 제막식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 후손에게 하는 평화의 약속이며 이곳은 약속의 장소’라는 염태영 시장의 말에 참석자들은 깊이 공감했다.
‘그때의 악몽으로 아직도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난다’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말은 그분들의 고통이 얼마나 뼈저린 것인가를 알게 한다. ‘…짓밟혀버린 모독의 목숨이던 그대여/저 빼앗긴 조국의 딸로/한밤중 통곡하던 그대여…’ 고은 시인의 추모시 낭독에 참석자들은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수원엔 10여 년 전만 해도 4명이 살아 있었으나 이젠 안점순 할머니만 홀로 생존해 있다. 전국적으론 55명이다. 일본은 피해자들이 생존해 있을 때 자신들이 저지른 성적 만행에 대한 사과를 하고 이에 따른 조치를 해야 한다. 그것이 선진국의 국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