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몰랐는데 식사를 하고 나면 식곤증까지는 아니라도 몸도 조금 무거워지고 정신도 느슨해지는 느낌이다. 실로 오랜만에 교육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점심식사 후 첫 강의 시간에 휴대전화가 울린다. 다른 때는 진동으로 잘 해 놓다가 그날따라 실수를 하게 되었다. 얼른 수신 거절 메시지를 전송하고 나니 이번에는 문자를 보낸 것 같아 누가 이렇게 끈질긴가 하는 궁금함도 있고 혹 무슨 일일까 해서 살짝 문자를 열어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읽어보아도 무슨 뜻인지 도무지 해석이 되지 않았다. 띄어쓰기를 단 한 군데도 하지 않았으니 내가 알 길이 없었다.
네티즌에 의한 한글파괴가 도를 넘는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외국어도 아니고 한글을 읽기는 해도 뜻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었다. 쉬는 시간이 오기를 기다려 옆 사람에게 부탁을 하니 나보다 젊은 그 사람도 한 참을 들여다보고서야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바꿔 읽어 주었다. 예전에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에 배운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수준이다. 옆 사람의 도움으로 내용을 알고 답을 해 주긴 했지만 세대 차이를 실감하게 되었다.
아침 일찍 대문 밖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았더니 어머님을 찾아오신 손님이었다. 어머님께서는 당황해 하시면서도 웃는 낯으로 반기셨다. 서울을 가시려고 하는데 차 시간이 안 맞아서 다시 집으로 가기는 그렇고 길에서 기다리기에는 너무 지루해서 들어오셨다고 말씀하셨다. 그 바람에 우리 식구들은 아침 식사를 하염없이 미루게 되었다. 그 분이 가신 다음 어머님께서는 혈당이 떨어질지도 몰라 조마조마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우리 집은 어머님 친구분들이 이른 아침은 물론 해가 지고 나서도 출입을 하시는 바람에 불편할 때도 많다. 잠시 가까운 곳 산책이나 성당 다니시는 일도 눈치 아닌 눈치를 보기도 한다. 어느 날에는 하루 종일 바깥 구경을 못하시고 갇혀 계시게 되는 날이면 많이 힘들어 하신다. 그러면서도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고 지나간다. 가족은 함께 있을수록 좋겠지만 남의 식구가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고 머문다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예전 같으면 지금도 더운 날씨기 이어지고 물가에는 휴가 손님으로 북새통을 이룰 때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물도 없고 사람도 없다고 하소연이다. 아침저녁은 조금 쌀쌀하기는 해도 낮에는 햇볕이 뜨거워야 하는데 거의 흐린 날이 이어지고 있다. 보통 말복 지나고 열흘이면 높은 바람이 난다고 했는데 올 해는 그럴 틈이 없고 말복 지나자마자 바로 가을이 온 것만 같다. 말복이 입추라서 그런지 하루 사이에 여름에서 가을이 되고 말았다. 마치 가위로 기온을 싹둑 자른 느낌이다.
계절이 바뀔 때에도 그렇듯 우리 생활 전반에 간격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글자의 간격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 잘 손질된 장독대의 간격처럼, 특히 사람의 사귐에 있어서는 “너무 가깝지도 말고 너무 멀지도 말고 썩은 새끼 끊어지지 않을 정도가 좋다”는 말도 있을까.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문학상 수상 ▲가평문인협회 이사 ▲플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