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인들은 아름다운 육체에 아름다운 정신이 깃든다는 영육일치사상(靈肉一致思想)에서 남성인 화랑(花郞)들도 여성들 못지 않은 화장을 했다, 또 귀고리 가락지·팔찌 목걸이 등 갖가지 장신구를 하고 그 멋을 뽐냈다.
남자인 화랑이 왜 화장을 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삼국유사에 ‘진흥왕때 잘생긴 남자를 택하여 곱게 꾸며 화랑(花郞)이라 이름 짓고 그들을 받드니, 무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예식의 일종이 일반화 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화장품은 쌀 같은 곡식의 분말, 분꽃 씨앗의 가루, 조개껍데기 빻은 가루 등 백분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사용, 얼굴을 희게해 결점을 감추었다. 또 홍화로 연지를 만들어 입술과 볼을 치장했고 굴참나무와 너도밤나무를 사용, 눈썹 모양을 그렸다. 이런 화장품은 대부분 여자용이나 당시 화랑 등 남자들도 함께 사용했다.
사실 남자의 화장은 고대부터 있었고 대개 종교적인 색채가 짙었다. 그런가 하면 미개 사회일수록 여자보다 남자의 화장이 더 보편화 되기도 했다. 화장을 하는 것이 성적매력의 증대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목축민의 전사(戰士)사회에서도 남자의 화장이 발달했다. 아프리카의 부족들이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이라는 마사이족의 화장한 모습은 지금도 아름다움의 전형으로 꼽힌다.
화장의 기원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 신에게 경배 혹은 기도하기 위해 했다는 종교적인 것 이외에 인체의 아름다운 부분은 돋보이도록 하고 약점이나 추한 부분은 수정 혹은 위장하고 싶어하는 인간 본능설이 있다.
또 신분, 계급, 종족, 성별을 구별하기 위한 신분표시설, 자신을 은폐시키기 위한 보호설 등도 있다. 그중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본능설이다. 하지만 언제부터 여성의 전유물이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화장이 지금과 같은 개념으로 정립된 것은 17세기경이다. 그리고 진화를 거듭, 3백년이 지난 요즘, 다양한 화장술과 화장품이 넘쳐나고 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여성이 있었다.
현대에 들어선 남성들도 여기에 가세하는 추세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최근 젊은층은 물론이고 40~50대까지 화장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덩달아 이들의 화장품 구입도 50%이상 증가 했다고 하는데 혹시 잘 보이고 싶은 과거 욕망의 부활은 아닌지.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