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왕산의 외침
산할아버지의 땅 가라왕산, 숲의 정령의 울부짖음이 온종일 멈추지 않더니 결국은 산골짜기 너머로 마지막 메아리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
2천475㏊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보호림인 가리왕산을 오르내리는 임도로 벌목한 나무들을 위태위태하게 쌓은 트럭이 고개운전을 하며 내려오고 있다. 수백 년 동안 조상대대로 보존되어 온 원시림이 헛된 부의 망상에 젖은 평창 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 경기 단 3일간의 스포츠 대회를 위해 그 운명을 다한다.
환경부 지정 녹지자연도 9등급 지역으로 세계 최대의 왕사스래나무 자생군락지이며, 우리나라 최대의 개벚지나무 자생군락지이며, 국내 유일한 주목 군락지이기도 한 수식어는 그들이 휘두르는 전기톱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하다. 힘겹게 오른 정상에서 지내는 산제는 처량하기만 하다.
국제스키연맹의 규정은 ‘개최국 지형여건상 표고차 800m를 충족하지 못할 때 표고차 350~400m에서 두 번에 걸친 완주기록으로 경기 가능’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표고차 750m인 기존의 스키장에 50m짜리 구조물만 세워 800m를 충족시키는 규정도 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이미 규정으로 만들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천억의 예산을 낭비하며 대규모 원시림을 파괴할 권리가 그들에게 있는가? 가리왕산을 훼손하지 않고도 동계올림픽 중 열리는 단 3일간의 경기를 아무런 문제없이 치룰 수 있음에도 진실된 외침에는 귀와 입을 닫는다. 독일, 스위스, 폴란드, 스웨덴 등 많은 선진국들은 이미 대규모 자연파괴를 일으키는 동계올림픽 유치 신청을 주민투표 또는 의회의 결의로 거부한 경우도 있으며, 설령 대회를 유치하더라도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도록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부정의한 사슬의 굴레를 벗어던지기엔 이미 그들이 빨아들인 사탕의 단맛을 내뱉기 어려운 까닭이다. 이미 올림픽 정신을 팔아먹는 스포츠 산업과 그들과 결탁한 권력, 그것을 비호하는 탐욕은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단지 돈벌이의 수단이나 배경을 위한 치장쯤으로 여기는 천박함에 있다.
CBD의 비극
통곡의 현장에서 역설적으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생물다양성 분야의 세계 최대 규모 국제회의가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다. 바로 ‘유엔 생물다양성협약(CBD) 제12차 당사국총회(COP12)’이다. 194개국 정부대표단을 비롯해 국제기구, 비정부기구, 다국적 기업 등 2만여 명이 참석한다고 한다. CBD는 기후변화협약(FCCC), 사막화방지협약(CDD)과 더불어 세계 3대 환경협약 중 하나다. 우리 정부가 행하는 너무나 야만적인 모습과는 너무 다르고 사치스러운 주제인 생물다양성의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 공정한 분배를 목적으로 2년마다 총회가 열린다.
이번 총회는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생물다양성(Biodiversity for Sustainable Development)’을 주제로 열리며 수립된 목표달성을 위한 ‘평창로드맵’도 채택,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가리왕산 원시림의 불법적인 벌목을 주도하고 있는 정부가 생물다양성 국제대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수치이며 그것을 막지 못한 국민이 그 대회를 바라보는 마음은 비통하기 그지없다. 아무리 위로를 하려고 해도 국제적인 협약에 가입한 숫자만큼이나 부끄러운 것이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며 현실이다.
공유지의 대한 관리의 책임은 그것을 향유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다. 결코 탐욕과 부패로 얼룩진 권력과 자본에 그러한 권한을 위임한 것이 아닌 것이다.
그 누구라도 이 순간 누리고 있는 행복을 가져다 줄 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다. 안타까움과 비관은 힘 있는 자들이 우리를 우롱하고 지배하는 수단일 뿐이다. 저항하지 않는다면 현재 가리왕산의 모습이 미래 우리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