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철 단풍은 약 90일동안 머문다고 해서 옛사람들은 구추단풍(九秋丹楓)이라 불렀다. 조선후기 학자 이천상(李天相)은 관동록(關東錄)에서 구추 단풍을 ‘처처상림금수신(處處霜林錦繡新/곳곳에 단풍숲 금수인냥 새로우니), 구추홍엽승화진(九秋紅葉勝花辰/구월의 단풍잎이 꽃피는 봄철보다 낫구나)’라고 읊었다. 단풍이 꽃보다 좋다니, 강산이 주는 흥취가 그만큼 무궁무진하다는 표현 일게다.
단풍은 산 전체 면적의 20% 가량이 물들었을 때를 시작일로, 80% 이상이 물들었을 때를 절정일로 잡고 있다. 그렇다면 단풍이 물드는 속도는 얼마나 될까. 기상청의 조사에 따르면 북에서 남으로 하루에 20㎞를 간다고 한다. 반면 봄꽃은 남에서 북으로 하루 30㎞ 속도라니 꽃소식 보다는 약간 늦다.
일엽지추(一葉知秋)라 해서 나뭇잎 하나가 떨어짐을 보고 가을이 영긂을 안다고 했다. 터득의 미학인지 몰라도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봄철엔 모든 이가 시인이 되고 가을에는 철학가가 된다’고 했다.
식물도 노폐물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식물은 콩팥 같은 배설기관이 없다. 그래서 세포속 액포라는 ‘작은 주머니’에 배설물을 담아뒀다가 갈잎에 넣어버린다. 일종의 배설인 셈이다.
흔히 단풍이 절정에 이른 것을 ‘불탄다’ 라고 한다. 우릴 황홀케 하는 새빨간 단풍잎들 덕분이다. 주로 단풍(丹楓)나무 과(科)의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크게 보아 그런 나무가 5종이 있다. 열편(裂片.잎사귀 둘레가 찢어져 뾰족뾰족 나온 낱낱의 작은 잎)이 3개인 신나무, 5개인 고로쇠나무, 7개인 단풍나무, 9개인 당단풍나무, 11개인 섬단풍나무등이 그것이다. 이 중 가장 붉은 것은 ‘당단풍’ 잎이다.
또 잎사귀에 카로틴이 많은 것은 당근 같은 황적색을, 크산토필이 풍부하면 은행잎사귀처럼 샛노랗다. 이밖에 타닌이 그득하면 거무죽죽한 회갈색들을 띠게 되는데 이 모든 색깔이 어우러져 산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이다. 가을에 청명한 날이 길고,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큰 해에는 단풍이 전에 없이 더 예쁘다고 하는데, 그것은 광합성을 이루며 나오는 당이 풍성한 탓이다.
단풍이 들어 떨어진 잎은 나무의 뿌리를 덮어 추위를 막아주고 썩어서 거름이 된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이다.
‘다음을 준비하는’ 나무의 지혜를 요즘 단풍을 보며 다시금 되새겨도 좋을 듯 싶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