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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딸과 구두

 

학교에서 돌아온 딸애가 호들갑이다. 구두의 앞창이 떨어졌다. 겨울의 끝자락에 세일해 판매한다고 사서 몇 번 신지도 않고 보관해 두었다가 처음 꺼내 신고 학교에 갔는데 밑창이 떨어져 덜렁거린다.

창피해서 죽을 뻔했다며 새 신발을 사달라는 아이에게 눈을 흘기고는 접착제로 붙이면 올겨울을 충분히 신을 수 있겠다 싶어 접착제로 붙여놓았는데 다음날 아침에 아이 아빠가 단단하게 수리해준다며 접착제를 얼마나 발랐는지 구두의 이음새 부분이 번질번질하다.

한눈에 보아도 ‘나는 떨어져서 땜질을 한 구두요’라고 새겨놓은 것 같다. 그걸 본 아이가 방방 뜬다. 창피해서 못 신고 다닌다고 당장 갖다 버린다고 난리다. 내가 봐도 좀 심한 듯하여 엄마가 신게 놔두라고 했더니 엄마도 신지 말라고, 절대로 신으면 안 된다고 성화다. 그러면서 기어코 제 아빠에게 신발값을 받아낸다. 끼어들어 야단을 칠까 하다가 아침부터 등교하는 아이에게 큰 소리를 내고 싶지 않아 참았다. 유난히 신발에 욕심이 많은 아이다. 운동화며 구두 종류도 다양하다. 우리 집 신발장을 다 차지하고도 모자라 상자에 따로 보관해야 할 지경이다. 하이힐이며 단화 그리고 통굽인 구두들이 계절별로 즐비한데도 구두점을 지날 때면 또 눈을 떼지 못한다.

딸애가 현관을 나선 후 신발장을 열어본다. 신발장 안에는 크고 작은 사연들이 신코를 들이밀고 있다.

저 신발들이 주인을 업고 학교며 카페며 각종 동아리 모임 등 곳곳을 누비고 다녔을 것이다. 가끔은 굽을 주저앉혀 주인의 눈물을 빼기도 했고 주인보다 먼저 옆으로 누워 굽을 갈아달라고 하소연도 했을 것이다.

미니스커트의 주인을 위해 얌전한 듯 뒤뚱거리는 걸음을 걷기도 했을 것이며 청바지 차림의 활달한 연출을 위해 빨간 운동화가 한몫했을 것이다. 여러 신발 중에 검은 구두 한 켤레가 나를 붙잡는다.

예고 입학식을 앞두고 구두를 사기 위해 수원과 평택의 구두점은 거의 다 돌아다녔을 것이다. 백화점이며 시장 아울렛 등 며칠에 거쳐서 아이를 따라다녔다. 그 많은 구두 중에 맘에 드는 구두가 없다고 했다.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맘에 안 들고…. 나중에는 둘 다 지쳐서 돌아다닐 힘이 없어지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구두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고가의 구두였다. 학생이 신기에는 터무니없이 비싼 구두였지만 더는 싸울 힘도 말릴 명분도 없어 그냥 사게 했다. 그렇게 유난스럽게 산 구두를 몇 번 신더니 학교에서 눈치도 보이고 부담스러워서 못 신겠다며 시장에서 저가의 구두를 새로 장만했다.

그 구두를 신지도 않고 버리지도 못하고 몇 년째 모셔두고 있다. 그 후부터는 비싼 구두를 사지는 않았지만, 구두에 대한 욕심은 여전하다. 이십 대 한창 멋 부릴 나이이기도 하지만 지나치다 싶을 때가 많다. 구두를 보면 딸애의 취향과 유행을 알 수 있다. 갓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굽이 높고 뾰족하면서도 화려한 구두를 선호하더니 졸업반이 된 지금은 그저 통굽에 발이 편한 신발을 신고 다닌다. 아마도 그게 세월인가 보다. 기어이 신발값을 받아간 아이가 오늘은 어떤 구두를 사 들고 올지 궁금해진다.



▲한국 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안건문학상 대상 ▲시집- 자작나무에 묻는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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