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12만명의 공무원들이 당정청의 연내 공무원연금 개혁 처리방침에 반대하고, 공적연금 수호를 결의하기 위해 여의도 광장에 운집했다. 이 집회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어째서 이렇게 많은 공무원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그 이면을 봐야한다.
대부분 국민들은 노후생계에 대한 뾰족한 방법이 없다. 26년 된 국민연금으로 현재 노인세대도, 미래노인 세대로 자식들의 도움이나 저임금 노동을 하지 않고서는 생활을 이어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정부는 이러한 대책 없는 국민들의 노후 소득보장의 현실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공무원연금과 비교하게 함으로써 국가로 향해야 했던 국민적 분노를 공무원으로 향하게 했다. 국민통합과 국민행복을 내세운 정부가 선택한 전략치고는 참으로 치졸하다.
공무원연금은 산업화 이전인 1960년대에, 국민연금은 산업화가 훨씬 지난 1988년에 도입됐다. 경제성장이 최우선인 국정기조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고, 이러한 국가철학으로 나이든 국민들의 삶이 국가정책의 대상이 되기까지 상당히 오래 걸렸다. 그렇다면 국가는 왜 공무원들에게만 연금을 일찌감치 제공했을까? 군사쿠데타로 대통령이 된 박정희 정권에겐 안정적으로 그들의 정권을 지탱해줄 인재가 필요했지만, 재정적으로는 넉넉하지 못했다. 연금제도는 당장의 국가재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인재를 영입해서 저임금으로 부릴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공무원연금은 현재 정부가 선전하는 특혜적 성격보다는 보상적 성격 측면에서 제도화되었다. 그런데 자연 퇴직자 및 구조조정에 따른 퇴직자의 누적으로 재정운영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 더욱이 각 정권들은 공무원에 대한 재정적 책임을 정권별로 부담하는 방식이 아닌 다음 정권에게 넘기는 것으로 책임을 회피해 왔다. 그렇다보니 제도가 합리화되기보다는 재정적인 근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개혁이 진행되면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하기 보다는 무조건 깎고보자는 방식이 선호되었다. 그 과정에서 공무원들은 무능하면서 자신들의 연금만 챙기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감정이나 분열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공무원 인사행정의 정상화가 선행되어져야 한다. 하위직과 10년 미만 재직자에 대한 임금 현실화와 퇴직금에 대한 적절한 분리가 전제될 때, 비로소 재정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공직사회 내부에서 형성될 수 있다. 공무원연금은 노후소득적 성격뿐만 아니라 후불임금적인 성격까지 포함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의 합리화를 위해서는 성격이 다른 요소에 대한 분리와 그에 따른 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이러한 합리성을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는 당장의 재정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에게 끊임없이 ‘공짜 복지’는 없다고, 국민의 책임을 요구하지만, 정작 정부는 고용주로서 재정책임은 회피하면서, 임금투쟁에 나선 공무원들을 파렴치한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정작 파렴치한 것은 고용주로서의 책임도, 국민에 대한 국가의 책임도 제대로 지지 않은 채, 모든 것을 공무원 탓, 국민 탓하는 정부 아닌가?
정부가 공적연금 개혁에서 내세우는 논리는 미래세대에게 재정적인 부담을 넘기지 않기 위해 공적연금의 축소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에서 미래세대의 급여를 과감하게 삭감했고, 공무원연금에서는 2016년 신규 공무원들에게 사실상 공무원연금을 폐지하기로 제안했다. 미래세대에게 공적연금의 재정안정화란 결국, 미래세대의 공권연금 수급권을 박탈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미래세대를 위한 진정한 대안이 필요하다. 대통령 한 마디에 개정 시한이 정해진 공무원연금 연내 처리는 불가능하고 대책이 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직접행동에 나서는 것에 대해 부럽다. 국민연금의 경우 이러한 가입자들의 실력행사가 진행되지 못해 결국 정부의 의지대로 모든 개악됐기 때문이다. 공적연금 강화라는 관점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해당사자 및 사회적 합의를 거쳐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