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첫날 임을 뜻하는 ‘설’. 언제부터 우리의 명절이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중국 역사서인 구당서(舊唐書)에 ‘신라인들이 매년 정월 원단(元旦)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희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인다.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로 짐작할 뿐이다.
고려사에 설날은 상원(上元 대보름)·상사(上巳 3월삼진)·한식(寒食)·단오(端午)·추석(秋夕)·중구(重九 중앙절)·팔관(八關)·동지(冬至)와 함께 9대 명절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한식·단오·추석과 더불어 4대 명절로 여겼다. 하지만 그중에 원단 즉 설날을 으뜸으로 쳤다. 새해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날을 전후해 관리들에게 7일간의 휴가를 주었고 신하들은 왕에게 신년을 축하하는 예를 올렸으며 왕은 신하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도 있다. 상서로운 날인 만큼 원일(元日)·원단(元旦)·원정(元正)·원신(元新)·원조(元朝)·정조(正朝)·세수(歲首)·세초(歲初)·연두(年頭)·연수(年首)·연시(年始)등 부르는 이름도 매우 많았고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세시풍속도 다양했다. 고려시대 정초엔 패수(浿水)에서 물과 돌을 서로 끼얹고 던지고 소리지르며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편싸움, 특히 석전(石戰)의 원류로 추정될 수 있다. 최근까지 농촌 마을마다 편을 나눠 쥐불놀이를 하는 것도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삼국시대에도 이미 설의 세시풍속이 상당히 있었지만 고려에 와서는 더욱 다양해졌고 조선시대에까지 이어졌다.
조선시대 문집에 기록된 시(詩)에는 정월 초하루에 집집마다 다니면서 나누는 새해 인사, 연하장 보내기, 악귀를 쫓기 위해 부적을 문에 붙이기,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 등의 세화 보내기 등의 여러 가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그 기록의 대표적인게 동국세기기다. 이밖에 설날의 세시풍속으로는 차례, 세배, 설빔, 덕담, 문안비, 설 그림, 복조리 걸기, 야광 귀 쫓기, 청 참, 윷놀이, 널뛰기, 머리카락 태우기, 나무 시집보내기 등이 있으며 현대 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연휴를 앞두고 네티즌들 사이에 이같은 설날 세시풍속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고 한다. 특히 고향 가서 꼭 한번 해보겠다며 각종 도구들을 준비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하는데 첨단 IT시대 별별 게임이 넘쳐나는 요즘, 평범하지만 우리 것을 찾는다니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