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함보다는 따스함을 더 느끼는 계절이 돌아온 것을 보니 가는 세월은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 며칠 전만 해도 심술을 부린 날씨도 덩달아 겨울 외투가 부담일 정도로 봄기운이 완연하다. 그래서 3월을 맞는 기분이 남 다르고 성큼 다가온 이른 봄바람이 코끝을 간질인다.
이러한 3월의 바람을 시인 이해인 수녀는 이렇게 노래했다. ‘어디선지 몰래 숨어들어 온/근심, 걱정 때문에/겨우내 몸살이 심했습니다/흰 눈이 채 녹지 않은/내 마음의 산기슭에도/꽃 한송이 피워 내려고/바람은 이토록 오래 부는 것입니까/3월의 바람 속에/보이지 않게 꽃을 피우는/당신이 계시기에/아직은 시린 햇볕으로/희망을 짜는/나의 오늘…/당신을 만나는 길엔/늘상/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살아 있기에 바람이 좋고/바람이 좋아 살아 있는 세상/혼자서 길을 가다 보면/보이지 않게 나를 흔드는/당신이 계시기에/나는 먼 데서도/잠들 수 없는 3월의 바람/어둠의 벼랑 끝에서도/노래로 일어서는 3월의 바람입니다.’
사흘 후면 경칩이다. 대지가 아지랑이의 호위를 받으며 활갯짓을 시작하는 시기다. 이럴 때쯤이면 3월의 봄바람은 더욱 봄을 실감나게 해줄 것이다. 춘삼월의 전령사답게.
3월을 두고 흔히 ‘춘삼월 호시절’이라 말한다. 봄의 경치가 가장 좋은 철이란 얘기다. 물론 춘삼월은 음력을 두고 이르는 말이지만 요즘은 제철이 앞서가는 만큼 삼월만 되면 성큼 다가온 봄을 느낄 수 있으니 춘삼월이라 여겨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봄맞이로 들뜬 우리의 마음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의 심술만 없다면 말이다.
남녘에선 벌써부터 꽃들이 꽃망울을 터트리며 봄을 알리고 있다. 눈 속에서도 꽃이 핀다는 설중매를 비롯, 홍·정매화도 깨어나고 있다. 사방의 눈에 들어오는 산과 들에도 소박하고 부드러운 야생화가 봄을 알리고 있다. 3월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3월의 바람은 우리들의 마음도 흔들어 놓는다. 발걸음을 들과 산으로 향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설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가 어렵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여전히 팍팍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3월의 봄바람을 가진 자만이 누려야 하는 특권일까. 아니다. 봄이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텨온 이 땅의 모든 서민들에게 골고루 다가오듯 3월의 봄바람은 자연이 모두에게 준 선물이기 때문이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