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은 ‘등’이나 ‘전기’ 따위를 이용하여 어둠을 밝히는 물체로서 등불은 등에 켜놓은 불이며 손전등은 전구에 전력을 공급하여 빛을 내는 등으로 전지를 장치하여 손에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간편한 전등이다. 또한 불과 손전등은 안에서 밖으로 빛을 발한다.
그러나 등불은 내향적이다. 등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빛이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밝힌 등불이다. 세상이 지혜가 부족하므로 그들이 실족할까봐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닌다. 그만큼 지혜를 사랑하는 헬라인다운 면모다.
반면에 손전등은 외향적이다. 손전등을 가진 사람이 외부를 향해 빛을 비추기 때문에 외향에 빛이 반사된다. 그리하여 상대 혹은 대상이 확인된다. 손전등은 21세기 과학발명품으로 인기가 있다.
등불은 자기를 밝히는 자아성찰을 의미한다. 자신이 들고 있는 등불을 통하여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 타인들이 그에게로 접근할 수 있다. 내향적이다. 그러므로 자아성찰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또한 자기를 밝히므로 자신의 온갖 죄(罪)의 유무를 고백할 수 있다.
그러나 손전등은 편리한 현대발명품의 이기(利器)이다. 이것의 특징은 자기는 들여다보기를 하지 않고 타인만 본다는 사실이다. 빛이 발할 때 손전등을 들고 있는 사람은 어둠 속으로 본의 아니게 숨게 된다. 그러면서 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비난거리를 찾거나 상대방을 비판한다.
‘손전등’을 켜본 경험에 의하면, 그것으로 자신의 얼굴을 비추면 타인들이 소스라치게 놀란다. 일상적인 얼굴 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착시현상 속에 괴기스러운 영혼의 일면을 섞어가며 상상의 날개를 자유롭게 펴서 괴기스러운 현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런 손전등으로 외부를 비치면 물론 본인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앉지만, 타인은 잘 보인다.
현대는 마치 손전등을 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시대 같다. 손전등을 서로 비춰가며 제 눈의 들보를 보기보다는 타인의 티끌을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리하여야만 자신이 자신의 존재감을 우쭐하게 느끼나 보다. 남의 단점을 보면서 상대적 우월감에 사로잡힌, 어쩌면 우리 자신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하며 나 자신을 또다시 점검해본다.
어쩌면 등불을 들고 가는 이 어두운 시대. 주객이 전도된 세상에 존재의 본질은 사라지고 현상만 남아 존재의 본질을 규정하려 한다. 목적은 상실되고 수단, 도구만 남아서 목적 지향성을 대신하려 한다. 인간의 고귀한 가치는 사정없이 널부러진 쓰레기와 같이 취급되고 황금이 만능이 되어 사람들마다 우상(偶像)인 황금 신(神)을 숭배하는 신도(信徒)가 되었다.
▲고려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 ▲경기예총 2012년 빛낸 예술인상 수상 ▲한광여중 국어교수 ▲한국문인협회 평택지부장 ▲시집 ‘카프카의 슬픔’(시문학사·199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