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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여백을 살리는 교육

 

19세기 말 우리나라에 와서 활동했던 캐나다 태생의 선교사 게일(J.S. Gale)이 남긴 기행문 ‘코리언 스케치’에 의하면, 한국인들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는 신분과 학력이라고 기술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면 신분과 학력 파악을 위해 ‘부모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를 묻고, 그 대답에 따라 존경과 경시의 관계가 성립된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의 학교는 대학 진학과 신분 상승을 위해 과중한 학습량을 단시간에 소화시키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러한 한국의 뜨거운 교육열과 향학열을 부러워하면서 극찬하였다고 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도서 출판 양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세계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국민이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 국민들의 독서량은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라고 한다. 최상위국 미국은 1인당 한 달에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 중국 2.6권을 읽는데 비해 우리는 166위로 겨우 1.3권을 읽고 있으며, 성인의 35%가 1년에 단 한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서량은 최하위인데 도서 출판 양은 세계 제일이라니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학교 현장이나 학생들의 공부방에 가면 이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고등학생을 기준으로 한 학생이 매 학기마다 구입해야 할 참고서와 문제지가 무려 30여 권에 달한다. 도서 출판의 양이 엄청날 수밖에 없고, 이 많은 책들이 다 팔려 고등학생의 손에 들어간다. 인문학, 사회학 등 교양서적은 물론 시집이나 소설집도 팔리지 않지만 참고서나 문제집은 재고가 없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 교육은 대학 입학과 신분 상승의 염원이 담긴 지식 교육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 마디로 우리 교육에는 여백이 부족하다.

학교를 의미하는 스쿨(school)은 그리스어 스콜레(schole)에서 왔다. 스콜레는 ‘여유’란 뜻으로 학교란 여유를 가지고 사색하는 곳을 의미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학교는 여유롭게 생각하는 공간이 되지 못하고, 주입식 교육으로 오히려 창의성을 잃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진정한 학교는 아이들의 창의성이 신장되고, 꿈을 심어주며 그 꿈이 싹터 꽃피고 열매 맺도록 도와주는 공간이 돼야 한다.

일본에서는 주5일제 수업이 본격화되면서 2003년부터 교과 내용의 30%를 줄이는 ‘유도리(여유) 교육’을 시행해 왔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2012년 주5일 수업제가 전면적으로 학교 현장에 도입되고, 요즘 일부 시·도에서 9시 등교가 시행되고 있지만 수업시간이나 학습량을 줄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논란은 있겠지만 학생들에게 체험이나 탐구학습의 기회를 주고, 종합적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과도한 학습량을 줄여주는 것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여백, 빈 공간 곧 자유로움이 있어야만 창의력, 상상력, 발표력, 글솜씨, 그림솜씨 등이 발달된다. 아이들이 행복을 느낄 때는 ‘좋아하는 일을 실컷 할 수 있을 때’이고, 불행하다고 느낄 때는 ‘성적 압박이 심할 때’와 ‘학습 부담이 너무 클 때’라고 한다. 과도한 학습량을 줄여 여백을 만들고, 그 곳에 독서, 스포츠, 문화예술 등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방과후 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여백의 미를 살릴 줄 모르는 시스템이다. 사군자는 여백으로 숨을 쉰다. 여백이 있어야 매화가 살고 난이 살고 국화가 살고 대나무가 산다. 여백은 그 자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사물의 존재를 살아 숨 쉬게 한다. 여백이 없다면 사군자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우리 교육도 숨을 쉬려면 여백을 만들어야 한다. 여백은 빈자리가 아니라 모두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자리다. 여백이 있는 교육이 여유 있는 삶을 열어주고, 아름다움과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지식을 배우는 면에서는 선진국이다. 이제는 여백을 살리는 교육으로 삶의 지혜를 길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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