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톤급 태풍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현 정권 실세 8명의 이름과 준 돈이 적힌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되면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실의 진위여부를 떠나 여야 모두가 숨죽이지 않을 수 없다. 성 전 회장이 자살하기 전 죽기를 각오하고 실명을 거론한데다 과거에도 이 같은 정치자금이나 뇌물 문제가 심심찮게 거론됐기 때문이다.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의지와 이를 밝히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겠지만 ‘차떼기’ 사건 이후 사라진 줄 알았던 정치자금 문제가 또다시 불거졌다는데 국민들은 충격이다.
회계처리 과정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없었다고 하면 뇌물로 흘러들어갔을 공산도 크다. 명단이 공개된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금품수수 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2002년 대선 당시 재벌그룹들로부터 받은 580억원의 불법자금을 트럭으로 실어날랐던 데서 ‘차떼기’라는 말이 유래했다. 불법적이고 비정상적 방법으로 선거자금 모금이 그동안 관행처럼 있어왔는데다 정권 실세들에게 거액을 돌렸다는 성 전 회장의 주장 자체만으로도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2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홍문종 의원은 최근 기자회견을 갖고 “1원이라도 받았다면 정계 은퇴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1억원을 측근을 통해 전달했다고 지목한 홍준표 경남지사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했다. 성 전 회장이 10만 달러를 줬다고 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메모에 남겨진 날짜를 문제삼아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불똥이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 어려워 여야가 모두 숨죽이고 있는 형국이다.
자살하기 전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 내용도 극히 일부만 공개됐다. 50분에 이르는 통화내역에는 또다른 메가톤급 폭로가 숨어있을지 모른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경향신문에 녹취록 전체 공개를 요구하는 이유다. 빨리 수습하지 않으면 대형 정치 게이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칫하다가는 4·29 재보선의 향배는 안개 속에 휩싸일 것이고 공무원연금개혁 등 굵직한 정국 현안의 논의도 실종된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수 없듯이, 당사자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사실여부가 낱낱이 가려져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정치개혁도 실종되고 부패척결은 물 건너 가는 것이다. 대통령이 나서 철저하게 시시비비를 가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게 정치권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