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둘 나란히 빈 의자가 놓여있는 공원. 명자나무 무리 옆으로 폴폴 날아오르는 참새 몇 마리 지켜보고 있다. 간혹 스치는 발길에도 파르르 놀라며 숨어드는 녀석들이랑 벌써 한 시간째 어설픈 호흡을 맞추고 있는 사내. 까딱까딱 까부는 모습이 젊은 날 어린 자식 보듯 하였는지 입가로 애틋한 미소를 흘리고 있다. 언제 그렇게 여유로운 시간이 있었던가. 새삼 가져보는 여유이건만 아직도 어색하고 불안해하는 건 정신없이 밟아오던 삶의 폐달, 그 속도 줄이는 연습이 부족한 탓일 게다.
“소원했던 휴가 드디어 얻으셨군요. 이제부터 마음껏 그 여유 즐기세요.”
정년퇴직 하던 날, 자식들이 하는 말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남편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만 쉬고 있다. 술기운 빌려가며 몇 날을 버텨 봐도 결코 채울 수 없는 그 허전함, 그 긴 하루, 무엇이 빠져나간 빈자리인지 자꾸 서러움만 밀려든다며 헛웃음을 흘린다. 안절부절 집안을 두리번거리다 이것저것 뒤져내어 정리를 하는가 하면 새벽잠 설치고 공원을 배회하기 일쑤. 하루 이십사 시간이 부족하다며 동분서주 먹이만 물어 날랐던 지난날, 아버지만 있고 나는 없는 가장만 있고 나는 없는 그 지난날만 자꾸 돌아보게 된다고 한다.
그때는 그랬다. 가난한 부모님의 뒤를 이어 더 열심히 살아야했기에 새벽부터 밤 늦도록 오직 일에만 충실해야 했다. 배워야 산다는 시대의 목표에 맞게 자식농사의 첫 번째가 대학공부 시키는 것이었으니. 여행 한 번 제대로 가보지 못한 외국으로 자식 놈 유학까지 보내가며 일궈낸 결과물. 그 결과물 또한 사회생활 운운하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마셔댔던 술에 절어버린 몸만큼이나 완전하지 못한 그림으로 남았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뒷일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달려왔다는 그이, 퇴직하고도 벌써 몇 달째 왁자지껄 뒤범벅이었던 그의 인생1막, 그 축제를 온전히 마무리하지 못하고 표류중인 것이다.
모든 축제에는 우울감이 동반된 후유증이 있게 마련이다. 특히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치는 인생의 다소 의무적인 축제야말로 더욱 그렇다. 어느 날 갑자기 무용지물이 된 듯 내 이름을 대신하여 펄럭이던 동아줄 같았던 직장이라는 그 든든한 끈이 일순간에 툭 끊어졌으니. 그러고도 세상은 덤덤히 잘도 돌아가고 있으니 더더욱 쓸쓸하고 허망할 수밖에.
흥분과 긴장의 연속이었던 삶의 도가니에서 튕겨져 나와 무력감에 빠져있는 그에게 가장 좋은 약은 차분하게 다음 축제를 준비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다음 축제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마치 세상으로부터 밀려난 듯 풀죽은 남편을 차분하게 지켜보는 연습이 안 되어서, 막연히 시간을 축내는 듯 보여서, 상대를 다그치고 한심하게만 생각했던 사람 덜 된 나. 나의 부족함이 그를 더 우울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주말산행 운운하며 아침부터 너스레를 떨어보았다. 인생 1막의 축제를 이제 막 끝낸 숱한 우리들의 남편, 가장, 아버지들이 하루 빨리 힘을 키워 아버지도 남편도 아닌 자신이 주인공인 의미 있는 인생 2막의 축제를 차분하게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단아하고 끈끈한 정으로 더욱 단단해진 가정이라는 포근한 울타리를 중심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