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기 중엽 백작부인 고다이바(Godiva)는 영국 코번트리의 영주인 남편 레프릭이 소작인들에게 과한 세금을 부과하며 폭정을 일삼자 이를 막기 위해 용기 있게 나섰다. 그러자 남편은 알몸으로 말을 타고 거리를 한 바퀴 돌면 세금을 경감해주겠다고 제의 했다. 백작 부인은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말을 타고 거리로 나선 것이다.
감동한 주민들은 모두 창문을 닫고 감사의 표시로 부인의 알몸 행진을 안보기로 약속을 했다. 하지만 단 한 명, 재단사 톰(Tom)만이 욕구를 참지 못하고 이를 몰래 훔쳐봤다. 약속을 깬 톰에게 주민들은 몰매라는 형벌을 내렸고 나중엔 눈이 멀어 죽었다. 엿보기 좋아하는 사람이나 호색가, 관음증 환자를 일컫는 영어 ‘피핑 톰(Peeping Tom)’이 생긴 유래다.
카메라 등장 이후 과거와 다른 ‘톰’ 들이 대거 나타났다. 카메라를 통해 누군가의 사생활을 몰래 지켜보는 신종 ‘톰’들이 등장 한 것이다. 그리고 은밀한 쾌감을 불순한 의도로 이용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비롯 세계 각국이 각종 법규를 마련하며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지만 ‘최첨단 관음증’ 환자들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IT 정보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도촬용 카메라도 덩달아 똑똑해진 덕분(?)이다. 무음카메라는 기본이고 주변의 사람이 몰래 카메라를 찍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도록 휴대폰 속 화면을 위장하는 카메라 애플리케이션까지 등장했다. 넥타이 안경, 볼펜, 자동차 키, 시계 단추등 일상적인 도구에 카메라를 내장한 경우는 이미 고전이 된지 오래다. 밝혀지지 않은 신종 장비가 어떤 것이 있는지 모를 정도다. 최근 용인 워터파크에서 발생한 몰카 사건에 사용된 카메라 또한 스마트폰 케이스에 부착된 신종이어서 더욱 그렇다.
누군가를 은밀히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감정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다. 그 욕구가 정상적인 단계를 넘어 병(病)적인 단계가 됐을 땐 범죄로 이어지며 건강한 사회 전체에 피해를 준다. 현대판 ‘톰’들에게 재단사 ‘톰’처럼 되길 기대하면 너무 가혹한 상상 일까?
/정준성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