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배지를 달았다고 해서 300명 모두가 자질이 뛰어나고 유식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개중에는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스스로가 실력이 있다고 외치는 의원도 있다. 또 이것저것 국민의 호기심만 자극하는 비밀을 폭로함으로써 자질과 유식을 대신하는 의원도 있다. 그런가 하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흘리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의원들도 있다. 모두가 국민의 관심을 끌기 위한 얄팍한 정치전술의 하나다.
이런 국회의원의 자질과 능력은 국정감사장에서 훤히 드러난다. 그래서 국민들은 의원이 정부나 그 산하기관을 감사하는 것 같지만, 실은 국감을 통해 오히려 그들의 자질과 품격을 시험 당하는 셈이라 말하는 사람이 많다. 갖춘 실력이 있는지, 국감 준비는 제대로 했는지, 전문지식은 있는지,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소리만 큰 수레인지가 국감을 통해 금세 드러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해온 국정감사 현장엔 그 증거가 수북하다. 어느 국정감사 치고 여야로 편을 가른 채 욕설과 고함, 저질 막말을 일상사처럼 되풀이 하지 않은 해가 없어서다. 또 피감기관엔 절대 강자로 군림하며 뒤로는 민원을 챙기는가 하면 어떻게든 방송 카메라에 얼굴 한번 잡히려고 목소리를 높이는 등 온갖 수를 다 쓴다. 어디 그뿐인가. 자료를 산더미같이 요청해 놓고서도 정작 질문 한 번 안 하는 금배지들도 부지기수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걸출한 국감스타도 여럿 나왔고 굵직한 비리와 정책 실패를 파헤친 소신 있는 국회의원도 수없이 배출했다. 하지만 이러한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욱 많았음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피감 기관장 등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들이 국감을 대하는 태도도 문제일 때가 많다. ‘잘 모르겠다’, ‘알아보겠다’, ‘시정하겠다’는 앵무새답변이나 즉답을 교묘히 피해나가는 미꾸라지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다반사여서다. 질문자나 답변자나 사정이 이러하니 국감이 비리와 잘못된 정책을 제대로 견제할리 만무다.
오늘(10일)부터 19대 국회 마지막 국감이 시작됐다. 그러나 처음부터 재벌들의 무더기 증인채택을 놓고 여야의 기싸움이 치열하다. 이번에도 제대로 된 국감 보기가 틀린 건 아닌지. /정준성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