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빈 것들
/공광규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들은 다 속이 비어 있다
줄기에서 슬픈 숨소리가 흘러나와
피리를 만들어 불게 되었다는 갈대도 그렇고
시골 뒤란에 총총히 서 있는 댓바람소리도 그렇고
갓 김태곤 힐링프로그램에 들고 나와 켜는 해금과 대금도 그렇고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회의 마치고 나오다가 정동 길거리에서 산 오카리나도 그렇고
나도 속 빈 놈이 되어야겠다
속 빈 것들과 놀아야겠다
흔히 ‘속이 비어 있다’는 말은 ‘내용이 부실하다’, ‘철이 없다’, ‘배가 고프다’ 등 부정적인 뜻으로 먼저 읽히지만, ‘허심’, ‘초탈’, ‘무소유’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도 한다. 어느 날 시인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들은 다 속이 비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슬픈 숨소리가 흘러나’오는 ‘갈대’가 그렇고, ‘댓바람소리’를 내는 대나무가 그렇고, ‘해금과 대금’이 그렇고, ‘오카리나’도 그렇다. 그러고 보면 ‘속 빈 것들’은 모두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사람이라고 무어 다르랴. 욕망을 버린 사람들, 마음을 깨끗이 비운 사람들도 악기일터. 그래서 시인은 ‘나도 속 빈 놈이 되어야겠다/속 빈 것들과 놀아야겠다’는 삶의 지향점을 재설정하는 것이리라. /김선태 시인·목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