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생시절 법과대학을 지망했었다. 그 시절 입시공부하던 책상 앞에 ‘축 서울대학 법과대학 합격, 김진홍’이란 글귀를 써 붙여두고 공부했다. 법과대학에 진학하려 하였던 이유는 단순했다. 가난한 집안 형편을 생각하며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가문을 빛내고 빠른 시일에 출세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 입학원서를 낼 때는 법학과가 아닌 철학과를 지원했다. 인생을 좀 더 의미지향적으로 살고 좀 더 멋있게 신바람 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때의 판단이 지금 내가 보람 있는 삶을 살게 하여 준 기틀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서울대학교에서 신림동 방면으로 내려가면 ‘고시촌’이란 지역이 있다. 이곳에는 무려 200곳이 넘는 고시원이 있고 3만 명에 이르는 젊은이들이 고시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듣기로는 서울대학생 중에서도 전공에 관계없이 고시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공과대학생 중에서도, 의과대학생 중에서도 자기 전공과목을 제쳐 두고 고시공부에 열중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고시지망생들은 일단 고시촌에 들어가면 3~4년은 기본이고 더러는 10년 가까이 고시공부에 청춘을 보낸다. 이로 인해 치르는 개인의 희생은 말 할 나위도 없겠거니와 뒷바라지 하는 가족들의 어려움은 어떠하겠는가. 그리고 국가적 손실은 얼마나 크겠는가.
100년 전에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하는 시기에 우리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치 못하고 망국의 비극을 겪었다. 지금은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사회로 바뀐 시대이다. 다행히도 100년 전과는 다르게 우리는 시대의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고 있다. 그런데 나라의 준재들이 육법전서에 매달려 있다면 얼마나 아까운 일인가. 오죽하면 고시망국론이란 말이 나오겠는가. 육법전서를 통째로 외운다 한들 그 내용으로는 선진한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 나갈 수 없다. 적성에 맞는 분야에 자신의 미래를 걸때 이 나라의 장래가 밝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