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배고픔을 참지 못해 함경북도 무산에서 처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두만강을 도강했다. 그 후 중국 길림성 화룡시에서부터 공안의 눈을 피해 청도, 곤명을 거쳐 독충이 득실거리는 라오스를 지나 사선을 넘나들며 태국 국경을 밀입국했고, 태국 이민국감호소를 거쳐 그해 12월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고 부천에 주택을 배정받아 입주할 때만 해도 정신지체장애가 있는 아들과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했지만 부천오정경찰서 보안과에서 재북 경험과 가정사 등을 면담한 후 부천시 산하기관에 취업을 알선해주어 살아갈 수 있었다. 이들은 명절마다 선물을 전달해줬고, 한국에서 빨리 적응하라며 안보견학, 문화탐방, 농촌체험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등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러나 아들의 학교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정신지체를 갖고 있어 북한에서도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어눌한 북한 사투리를 쓰는 아들은 이곳에서도 따돌림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자포자기를 하고 있을 무렵, 사정을 들은 신변보호담당관이 발벗고 나섰다. 그는 선생님과의 면담을 통해 아들의 문제를 진단했고, 학교 전담경찰관을 통해 따돌림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학교 전담경찰관과 함께 아들에게 스킨십을 해줬으며, 종종 교실을 방문해 아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아이들의 시선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지난해 10월에는 돈이 많이 들어 데려가지 못했던 에버랜드를 같은반 친구들 몇명과 함께 데리고 가주고, 해마다 보안협력위원회를 비롯한 기관단체에서 수여하는 장학금 수여학생으로 아들을 선정해주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글을 통해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 이렇게 신경써주는 분들의 노력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이번 언론 기고는 지난 설 명절에도 설 선물을 가지고 직접 방문해준 신변보호관님에게 고마움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 이렇게 결심케 되었다. 오정경찰서 담당 경찰관들의 도움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당당한 일원으로 열심히 살아갈 것을 맹세해 본다. 이명길·탈북민 (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