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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두레밥상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는 초록들처럼 채마밭도 풍성하다. 시큼하게 익어가는 매실과 상추며 아욱 쑥갓이 앞 다투어 키 재기를 한다. 모종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고추도 벌써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살짝 덜 영근 고추를 고추장에 푹 찍어 입 안 가득 밀어 넣으면 상큼하고 매콤한 향이 입맛을 돋운다. 새벽에 나가 풀 뽑느라 지친 몸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랄까. 이것이 텃밭을 가꾸는 매력일거다.

여럿이 먹던 식탁에 둘이 앉아 식사를 하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밭에서 갓 채취한 신선한 야채를 먹으며 마주보며 웃는 즐거움 또한 좋다. 아이들 둘 분가시키고 나니 둘만 남았다. 밖에서 기척이 들리면 큰 아이가 들어설 거 같아 자꾸 문 쪽으로 눈이 간다. 혼인하여 가까이에 신접살림을 차렸는데도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오래된 습관인지 아니면 막연한 기다림인지 모르겠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 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팔남매 키워 출가시킬 때마다 그 빈자리가 얼마나 컸을지 감히 상상이 된다.

온 식구가 툇마루에 둘러앉아 식사하고 마당에 멍석을 펴고 누워 별빛 쏟아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밤이슬 내린다고 방으로 들어가라고 성화하시며 모깃불을 놓아주던 아버지도 상추쌈을 좋아하셨다. 푸성귀를 한 소쿠리씩 씻어 놓으면 보리밭에 된장 발라 볼이 터지도록 먹던 기억이 새롭다. 이맘쯤이면 이웃 과수원에서 솎아낸 복숭아를 벅벅 문질러 씻어 감미료 조금 넣고 깨물어 먹기도 했다. 많이 먹으면 배앓이 한다는 어머니의 염려도 아랑곳없이 들메날메 먹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이나 예나 태어난 신분에 따라 삶의 모습이 달라지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집만 하더라도 딸이 여섯에 아래로 아들 둘을 얻었으니 귀하기가 남달랐다. 어린 마음에 아들은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났고 딸들은 흙 수저라고 생각했다. 남동생이 잘못해도 딸들이 야단맞았고 남동생이 다치거나 밖에 나가서 맞고 들어와도 모두다 딸들 책임이었으니 철모르는 시절 얼마나 억울했는지 모른다. 딸로 태어난 것이 내 죄도 아니건만 이런저런 일에서 차별받는 것이 싫었고 대부분이 아들 중심이 것이 짜증나기도 했다. 하여 다짐한 것이 나중에 결혼하면 아이는 하나만 낳아 둘 셋에게 쏟을 정성 하나에 공들여 정말 제대로 키우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결혼하여 아들 하나만 키우다 나중에 딸아이를 얻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딸아이 안 낳았으면 어떡했을까 아찔하다.

사람은 태어난 신분보다는 사람의 그릇이 중요하다. 투박한 질그릇은 토종의 맛을 느끼게 하는 매력이 있고 플라스틱이나 일회용 용기는 가볍고 사용에 편리함은 있으나 깊은 맛이 없으며 놋그릇은 볼품은 있으나 사용과 관리가 어렵듯 사람도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역할과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

어릴 때 아들로 태어났으면, 방앗간 집 딸로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처럼 내가 가진 것보다는 남의 손에 것이 크고 좋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금 수저는 아니어도 은수저 정도는 물고나왔지 않나 싶다. 성장기에 부모님이 지켜주시고 여러 형제들 속에서 아옹다옹 살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축복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지금은 남편과 마주 앉은 조촐한 식탁이지만 어머니와 팔남매가 둘러 앉아 수박 쪼개고 옥수수 먹으며 지난 시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싶다. 이런저런 사연들을 상추쌈에 넣고 둘둘 말아 볼이 터지도록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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