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란 무엇인가?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을 말함인가. 아니면 어떤 자유에도 일정한 제한이 따른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존중되어야 할 자유와 제한되어야 할 제약(制約)이란 무엇인가. 19세기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이며 경제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그의 ‘자유론’에서 “‘사회(社會)’란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라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일단은 자유로운 곳”이라고 했다. 때문에 여러 개인이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각자가 일정한 의무를 져야할 뿐만 아니라 그 의무를 위반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정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도 불가피한 일이라고 했다.
다음에는 20세기에 활동하던,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n, 1889~1974)’이라는 철학자이며 사회학자의 주장을 들어보자. 그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을 보고난 후에 그에 대한 의사(意思)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의사를 결정한 다음에 사물을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외부세계의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상태 속에서 일정한 형태로 만들어 놓은 고정관념을 그대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즉 TV나 신문 인터넷에서 발신된 정보를 보고 백화점이나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살 때도 마치 그것이 자신의 생각인양 그대로 실행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리프만은 그런 정보의 위험성에 대하여, “당신의 자유의사란 무엇인가? 당신이 믿고 있는 당신의 판단이 진정으로 당신의 자유의사에서 나온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경고를 보낸다. “오늘과 같은 정보홍수시대에서는 어떤 사고방식이나 관점이 판에 박힌 문구로 전달되고 그것이 그대로 의식에 침투되어 여론을 형성해 나가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시대의 위험성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진정한 자유의 추구란 한도 끝도 없이 굴절되어 애매모호하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이란 과연 어느 정도의 자유를 추구할 수 있는 존재일까? 또 다시 20세기에 활동하던 심리학자 ‘에리히 프럼(Erich Pinchas Fromm, 1900~1980)’의 견해를 들어보자, 그는 “인간이란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유로부터 도피(逃避)하는 존재”라고 했다. 그는 미국 뉴욕대학 사회심리학교수로 있으면서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유명한 저서를 남겼다. 프럼은 “인간은 무제한적으로 자유를 추구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일정한 만큼의 자유를 획득하면 그때부터는 오히려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경향을 갖는다”고 했다. 즉 개인이 가족이나 사회에 귀속되고 의존하여 일체화되면 그때부터는 구속을 느껴 자유를 추구하지만, 일단 집단의 구속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유로워지면, 그때부터는 또 다시 개인으로 혼자 살아갈 일에 대하여 불안을 느껴 자유를 포기하는 모순된 존재라고 했다. 남·여가 결혼을 하는 것이나 국가·사회에 대한 의무와 애국심 등에 복종하는 것도 결국은 그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자유를 포기하면서 가족과 사회조직과의 유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자유의 개념을 중심주제로 삼았던 실존주의도 실존의 고유성과 공동의 윤리적 책임의식을 강조하고 있지만, 모든 자연의 존재들이 근거하고 있는 생명의 상호연대성을 배제하고 있는데서 한계를 드러냈다. 인간 개체로서의 ‘나’는 자유의 주체다. 그러나 단독자로 고립되어있는 주체가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 더불어 살면서 선택과 결단의 자유를 행사하는 주체인 것이다. 여기서 더불어 사는 타자(他者)란 서로가 불가분의 상태로 의존되어 있는 자기존재의 조건으로서의 다른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선택과 결단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면서 생명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아’란 자유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자아를 부자유의 속박으로 몰아넣고 있는 모순된 존재가 바로 자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