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길바닥 여기저기 공해가 됐지만 예전엔 여간 귀하게 여긴 것이 아니었다. 책상 다리에 붙였다 생각나면 떼서 또 씹고, 잘 때 머리맡 벽에 붙여 놓았다가 아침에 학교 갈 때 떼서 ‘질겅질겅’ 또 씹고, 사흘 후 무슨 개선장군처럼 ‘짝짝’ 소리 내어 재차 씹기도 하고. 주전부리가 귀했던 60∼70년대를 보낸 중장년이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금방 눈치 챘을 것이다. 그렇다. 껌 이야기다. 젊은세대가 보면 ‘에이 설마’ 하며 기겁 하겠지만 그땐 그랬다. 처음엔 그저 달달한 설탕 맛이고,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단물이 빠져 고무 씹는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당시엔 그게 그렇게 입을 호사시켰으니 지금도 잘 모를 일이다. 그러나 곰곰이 되짚어 보면, 집착했다고 할 정도로 껌을 선호한 것은 단맛에 매혹되고 중독된 인간의 본성 때문 아니었나 생각된다.
세상에 태어나서 모유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어 본 적 없는 아기들조차 단맛에는 호의적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고전이다. 그만큼 단맛을 선호하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으로 알려져 있다. 태아나 신생아가 단맛을 좋아하는 것은 본성 이외에 편안함이라고 한다. 태아는 당을 통해서 에너지를 공급받고 그렇기 때문에 ‘당’이 느껴지는 단맛의 양수를 선호하고 신생아 역시 모유를 통해 몸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원을 공급받는데, 모유의 유당 성분이 ‘단맛’이기 때문에 아기들은 단맛을 가장 편안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아이들 또한 단맛을 좋아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처음 맛본 사탕, 초콜릿, 설탕, 아이스크림에 정신없이 매료되는 것은 그 안에 존재하는 단맛, 즉 포도당과 관련된 화학물질이 있어서다. 진화적으로 인간에게 단맛은 곧 에너지였고, 생존을 보장해 주는 ‘편안한 맛’이었다. 그래서 이후로도 인간은 단맛을 내는 음식을 포도당이 들어 있는 음식이라 여겨 무조건 선호하게 된 것이다. 먹을 것이 적고 순수한 단맛이 존재했던 오래 전에는 단맛에 대한 무조건적인 선호가 우리의 생명을 연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공적인 단맛이 많아지고, 단맛을 인위적으로 더 강하게 조장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쉽게 떨치지 못한다. 오히려 점점 더 다양해지고 강해지는 단맛을 접하면서 제어할 수 없는 중독에 빠져들고 있다.
이야기가 많이 다른 데로 흘렀지만, 아무튼 어린 시절 껌에 대한 기억은 ‘달달함을 씹는다’는 즐거움이 전부다. 어른들이 ‘소화 금방 된다’며 그만 씹으라 해도 여전히 입에 물고 다닌 것도 이 때문이었다.
소위 이런 ‘껌’을 팔아 지금의 그룹을 일군 게 롯데다. 창업주 신격호는 1946년 일본에서 껌을 처음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치고 2년 뒤 일본 롯데를 창업했다. 껌 하나로 대기업 반열에 오른 그는 20년 후인 1967년 국내로 귀국해 롯데제과를 세웠다. 첫 생산품 역시 껌이었다. 첫 선보인 껌은 지금 들어도 기억이 생생한 ‘쿨민트껌, 바브민트껌, 쥬시민트껌, 페파민트껌, 슈퍼맨 풍선껌, 오렌지볼껌 등 6종이었는데 당시 가격이 2~5원이었던 이들 제품으로 그 해 3억8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 해 동안 전 국민이 2통 이상 껌을 씹은 셈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롯데 성장의 일등 공신은 달달한 맛에 유혹된 국민들이 분명하다. 1972년 출시돼 국내 껌 시장에서 최장수 제품으로 알려진 쥬시후레쉬, 후레쉬민트, 스피아민트는 지금도 ‘3총사 껌’으로 불리며 건재를 과시중이다. 이렇게 회사 설립과 함께 팔기 시작한 롯데껌의 누적 매출액이 지난 5월 4조500억 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49년간 팔린 롯데껌 양이 대표 껌 상품인 쥬시후레쉬로 환산하면 300억 통이 넘는 것이다. 9개가 들어있는 통을 일렬로 늘어놓으면 1320만km로 지구를 330바퀴 도는 거리와 같다. 낱개로 세면 약 2000억 매로 전 세계 인구 73억5000만 명이 약 27개씩 씹을 수 있는 양이다. 껌을 많이 씹지도 않았는데 입이 딱 벌어진다.
껌 이외에 롯데제과가 생산한 제품 대부분이 과자 사탕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원초적 본능 ‘단맛’에 호소해 부를 일군 롯데가 요즘 ‘쓴맛’을 톡톡히 보고 있다. 아니 ‘죽을 맛’을 보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런데도 일부 롯데가 오너들은 ‘껌’ 씹어 부를 일구게 해준 국민들에게 속칭 ‘껌씹는 말’로 작금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획책하고 있다. 장부를 빼돌리고, 거액의 현금을 숨기고. 씹다버린 ‘껌딱지’가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