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교회 주차장에 세워 두었던 자동차 보닛을 무심코 짚었다가 깜짝 놀랐다. 센불에 달군 프라이팬처럼 뜨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동차 문을 열며 ‘훅’하는 열기에 두 번 놀랐다. ‘아이쿠 야!’가 저절로 나왔다. 한낮 온도가 체온보다 높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싶었지만 요즘 더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 풍경도 더위 그 자체다. 지나는 사람마다 연신 ‘덥다 더워’라며 손에든 부채를 흔든다. 도로는 태양이 덥힌 열기로 가득차고 거기에 지열까지 겹쳐 그야말로 찜통 가마솥이 따로 없다. 가로수와 도로변 초목들도 마치 뜨거운 물에 데쳐 놓은 듯 축축 쳐져있다.
낮에만 그런가? 연일 새벽까지 잠을 못 이뤘다. 선풍기를 켜놓고 아무리 잠을 청해도 더위는 순순히 수면을 허락하지 않아서였다. 간신히 잠이 들어도 금방 깼다. 안방에서 거실바닥, 소파위등 위치를 이동해도 청 하는 잠은 올 생각을 안 한다. 여름에도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 바람마저 싫어하는 집사람조차 잠 못 이루고뒤척이는 것을 보니 열대야가 보통 아닌 게 틀림없다.
이럴 때면 어릴 적 잠 못 드는 무더운 밤, 죽부인을 끼고 삼베 홑이불을 덮고 잘도 주무시던 어른들이 생각난다. 뒤척이는 나에게 ‘가만있으면 안 덥다’며 얼른 자라시며 이내 코를 고시는 여유가 얼마나 부러웠던지 모른다. 한여름의 무더위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이것을 식히는 피서법은 사뭇 달라졌다. 옛 선인들은 자연의 숨결 속에서 더위와 더불어 하면서도 그 가운데서 서늘함을 얻은 지혜가 돋보인 반면 오늘날에는 대부분 차단된 밀폐공간에서 기계의 도움으로 더위를 다스리고자 한다.
‘부채’를 부치면서 그 가운데서 더위를 이겼던 조상들의 여유. 요즘 같은 더위에 더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찜통인 날씨 덕에 신록은 더 푸르러졌다. 더위를 피해 숲속으로 들어가면 수목들이 뿜어내는 향기도 온 몸을 감싼다.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논에서 푸른 벼가 쑥쑥 자라고 과수원의 사과 배 포도가 제빛을 내며 탐스럽게 익어 간다. 농부들은 이를 보면서 ‘햇볕이 따가워야 벼가 잘 익고 과일이 달다’며 오히려 더위를 즐기는 여유로움도 보인다. 아마 고생한 보람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일게다.
열기로 가득 찬 도심의 풍경은 한적하다. 그러나 냉방이 잘된 카페엔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로 제법 붐빈다. 북새통을 이루며 피서객들로 넘쳐나는 바다와 계곡에 비하면 여유로움 그 자체다. 간혹 테이블 위에 커피 한잔을 놓고 책 읽는 모습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북캉스가 이런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콩국수나 냉면, 그리고, 반찬으로 올라오는 가지무침, 늙은 오이 무침, 호박볶음 열무김치등을 시원한 냉국과 함께 먹는 것도 여름의 조촐한 기쁨이다. 잃기 쉬운 입맛을 잡아 주고 건강도 챙겨주니 일석이조다. 크고 둥근 수박을 쩍 갈라 식구들이 한 조각씩 나눠 먹는 것도 여름극복의 지혜라면 지혜다. 달달한 과즙이 목으로 넘어 갈 때면 어디선가 ‘더위야 물렀거라’하는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무더위와 권태에 지친 이들이 휴가를 얻어 한창 여행들을 떠나는 것도 이쯤이다. 공항과 터미널, 역에 몰려든 피서객들이 긴 줄을 서서 출발을 기다리면서도 얼굴은 기쁨으로 빛난다. 여행의 피로가 누적될 것을 알지만 개의치 않는 모습들이다.
그러나 무더위 속에서도 야자시간과 학교 도서관에서 책에 고개를 파묻은 채 공부에 몰두하는 수험생과, 적은 시급에도 쉴 틈이 없는 알바생들, ‘피서지마다 인산인해’라는 TV 뉴스자막이 괴로운 청년백수들도 있다. 휴가는 고사하고 하루하루 고단한 삶마저 이어가기 힘든 이웃들도 있다. 해서 ‘누군가의 여름은 권태롭고, 누군가의 여름은 바쁘고. 누군가의 여름은 지겹다’고 했나보다.
난 아쉽게도 아직 휴가 계획을 못 잡았다. 덕분에 매일 집사람에게 ‘닦달’을 당하지만, 예전처럼 조바심이 나지 않는다. 나이 먹으면서 배짱(?)이 는 것일까. 속내를 알아차린 집사람은 슬그머니 혼자만의 휴가 계획을 세운 모양이다. 강도가 약해진 것을 보니. 이런 여름도 곧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아, 어제까지 여름이었는데…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