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동네에 쌍둥이가 태어나면 그 날부터 그 집 택호는 자동으로 쌍둥이네 집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다른 동물은 보통 한 번에 여러 마리를 낳는 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사람은 하나를 낳는 것을 정상으로 여기고 만약 쌍둥이가 태어나면 별나게 여긴 나머지 주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 중에도 일란성 쌍둥이는 가족들은 얼굴을 구분하겠지만 드문드문 보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구두, 장갑, 양말 등 똑같이 닮은 짝과 늘 함께 있게 마련이지만 사람은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 살아가는 동안에 서서히 닮는 게 이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혹자는 결혼 생활을 신비라고까지 한다.
어느 날 우리 토속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에서 꼴두국수를 소개하는 것을 보고 결국 그 맛을 보기 위해 더운 여름날에 먼 길을 떠났다. 날은 더웠고 초행길에 방송에 소개된 집을 찾지 못했다. 그 지역의 시장도 돌아보고 그 곳 사람들이 가르쳐 주는 대로 찾다 허탕을 치기도 하며 결국 제법 오래 되어 보이는 집을 찾았다.
상가에서 조금 벗어난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서니 생각보다 훨씬 연세가 드신 노부부가 맞아준다. 찌들은 벽에 그 집의 역사가 담긴 사진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다녀간 사람들의 것으로 보이는 서명과 글귀가 보인다. 구석에 놓인 식탁에서는 선풍기가 마지못해 억지로 돌고 있는 것처럼 바람은 시원하지 않았다. 늦은 점심으로 주문한 꼴두국수는 방송에서처럼 그렇게 구수하지도 당기는 맛도 아닌 그냥 시골음식이었다. 그러면서도 큰 그릇에 많이 담긴 메밀을 밀어 끓인 칼국수를 먹으며 두툼하게 썰어 넣은 감자와 호박도 간간이 곁들여 먹다보니 어느새 국물까지 비우고 그릇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처음엔 별로 호감이 가지 않던 사람이 자주 보면서 점점 정이 드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빈 그릇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늦은 시간 뉘엿뉘엿 지는 해를 끝내 따라잡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후후 불면서 메밀싹둑이를 드시던 떠들썩한 친정집 사랑채가 보인다. 커다랗게 민 메밀반죽을 도마 위에서 무쇠칼로 무슨 장단을 맞추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면 가지런히 썰어진 칼국수가 함지박으로 소반위로 옮겨졌다.
진즉부터 끓이던 김칫국에 넣어 한 소큼 끓여내던 메밀싹뚝이의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강원도 지방의 토속음식으로 소개되는 꼴두국수나 경기도 산골에서 끓여먹던 메밀싹둑이는 멀리 떨어져 살아 이름만 서로 다를 뿐 재료나 조리법이 같은 쌍둥이 음식이었다.
요즘은 애 어른 없이 바쁘다보니 주부라고 해서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할 시간이 넉넉지 않다. 그런 실정이라 패스트푸드도 많고 푸드트럭도 만난다. 거기다 요리연구가들은 각국의 요리는 물론 퓨전요리를 선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나 같은 촌사람에게는 보기에 좋기는 해도 별로 입맛을 당기지는 않는다.
음식도 예전부터 먹고 익숙한 맛이 편하고 좋다. 누군가가 우리 지방의 토속음식도 발굴해서 소개도 하고 대중화 시키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