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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고추를 따다

 

뜨겁게 달궈진 태양만큼이나 고추도 붉게 익어간다. 가지가 찢어질 듯 달린 고추밭, 고랑이 환하도록 익은 고추가 8월의 한낮을 달구고 있다. 밭고랑에 들어서기도 전에 온몸은 땀으로 젖지만 수확의 기쁨은 즐겁다.

100포기 고추를 심었다. 매운 고추 몇 포기, 아삭이 고추 몇 개 그리고 파프리카 3포기 등 아쉽지 않은 만큼 모종을 심었다. 제대로 농사지어 잘 말리면 1년 식량으로 족하다. 농사가 서툴러 고추벌레와 함께 농사를 짓지만 농약 치지 않고 이만큼 농사면 되었다 싶다.

탄저병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식초와 매실액과 물을 혼합하여 농약대신 뿌리고 벌레 먹고 병난 고추는 따다 멀리 버리는 것으로 병충해와 싸우지만 주렁주렁 열려 익어가는 고추를 보면 더위도 물러나는 듯싶다.

1년 농사가 돈으로 따지면 인건비도 안 되지만 무엇보다 내 손으로 고추 따고 말려서 김치 담고 찌개 끓이고 아들네 주고 하는 것이 보람 있다. 고추를 따다보면 가지도 찢어지고 시퍼런 고추도 따게 된다. 붉은 것 같아 따고 보면 아직은 푸릇함이 남아있어 말리면 곱기가 덜하다. 고추를 따러 갈 때마다 이번엔 잘 익은 것만 골라 따자 하면서도 따놓고 보면 좀 더 익혀야 할 것이 생긴다. 어릴 적 어머니 따라 고추밭에 몇 번 가본 경험과 결혼하여 1년에 한두 번 시부모님 따라 들에 나서 본 것이 전부인 나로서는 들일이 어렵고 고되다.

연일 폭염으로 국민안전처는 폭염경보에 노약자는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충분한 휴식과 물을 자주 마시라고 수시로 문자를 보내지만 이를 따르기란 쉽지 않다. 들일이란 게 때가 있어서 시기를 놓치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옥수수는 하루 이틀만 더 익혀도 딱딱해져서 맛이 덜하고 오이도 늙어버린다. 참외는 꼭지를 떨구거나 보기는 멀쩡해도 속이 농익어 맛이 없다. 그러다보니 더위와 상관없이 들에 나서게 된다. 새벽에 들에 나가도 해가 나면 달궈지는 것은 금방이라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밭고랑이 찜질방이다. 그래도 풀은 뽑아줘야 하고 손이 가는 만큼 성장이 다르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큰다는 말이 실감난다. 우리야 농사랄 것도 없는 일천 평방미터 남짓 작은 밭을 경작하는데도 이렇게 진땀을 빼는데 농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여름이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요즘 같은 폭염엔 특히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

간혹 밭고랑에서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노인의 소식을 접할 때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왜 미련스럽게 죽을 만큼 참고 견디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땡볕에서 일하다보면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흙에 범벅이 되어 정신이 혼미해질 때가 있다. 돌봐줄 사람이 있으면 응급조치라도 하겠지만 노인 혼자 당할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라지만 더워도 너무 덥다. 문 밖을 나서면 의지할 곳이 없다. 그래서 팔월엔 휴가를 주고 휴식을 취하라 하지만 농부들은 그럴 여력이 없다. 돌아서면 자라는 풀과 벌레들의 천국을 등지고 떠나기란 쉽지 않다.

고추를 말린다. 고추를 깨끗이 닦고 꼭지를 따서 가정용 건조기에 말린다. 높은 온도에서 말리면 고추가 까맣게 말라 빛깔도 맛도 제대로 나지 않아 은근한 온도로 사나흘 말리면 태양초 부럽지 않다. 고추가 다 건조될 쯤 다시 고추를 따야 한다.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고추밭으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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