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로 잠을 못 이루는 데다, 올림픽중계 방송마저 야심한 시각에 진행되는 바람에 심신이 더 피곤한 요즘이다. 그런데도 금메달이 예상되는 종목을 중계하는 날이면 여전히 텔레비전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시간도 관계없다. 우연히 기대하지 않았던 선수가 선전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예선전에서 뜻밖의 성적을 거두는 선수를 보고 내 일처럼 기뻐한다. 그리곤 금세 메달에 근접한 것인 양 기대치를 높인다. 지난 7일 여자유도 48㎏급 정보경 선수가 세계 랭킹 1위인 몽골의 문크흐바트 우란체체그를 2회전에서 누를 때도 그랬다. 세계 8위인 정보경이 이같이 선전하자 ‘이왕이면 금메달…’을 많은 사람들이 외쳤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한가. 한껏 높아진 기대치가 은메달에서 멈추자, ‘기왕이면 금메달을 땄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아쉬워했다. 당초에는 많은 기대를 하지 않은 결과인데도. 사람 욕심이란 게 이렇다.
그렇다면 본인은 어떨까. ‘아쉬움’이 ‘승리의 행복감’보다 더 크게 느껴졌을까. 아니라고 한다. 아쉬움은 남지만 행복감이 더 컸다고 한다. 보는 사람은 선수가 금·은메달을 따도 “기왕이면 금·은·동 다 따지” 하는 식이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안 그렇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금·은·동 메달 색깔대로 선수들이 만족감을 느낄 것 같지만 이 또한 아니라고 한다.
동메달을 딴 선수가 은메달을 딴 선수보다 심리적 만족감에서 더 앞서서다. 미국 코넬대 연구진은 이 같은 사실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증명해 낸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연구진은 TV로 중계된 선수들의 표정을 통해 감정 상태를 살펴봤더니 경기 종료와 함께 은메달이 확정된 선수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4.8점인 반면 동메달리스트는 7.1점이나 됐다. 시상식에서도 동메달 만족도는 5.7점으로 은메달의 4.3점보다 높게 나왔다. 은메달을 딴 선수에게는 금메달이 만족의 기준이 되지만 동메달리스트에게는 노 메달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란다. 메달에도 미묘한 심리 메커니즘이 작용한다는 의미다.
행복은 늘 이렇게 상대적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충분히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1등 할 수 있었는데” “1등만 했더라면”에 매여 속을 끓이면 행복과 기쁨은 사라진다.
스포츠뿐만이 아니다. 생활 속에서도 사람이 느끼는 행복이나 만족감은 절대적일 수 없다. 기본적인 생활이 유지된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늘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타인과 비교해 자신이 낫다고 판단될 때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느끼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사람은 수준보다 비교에 민감하다. 선진국에서도 아내가 만족하는 남편의 연봉은 제부, 즉 남편의 동서보다 단돈 몇 푼이라도 더 많으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행동경제학에선 이를 ‘끝이 좋아야 만족한다는 피크-엔드 효과(Peak-end effect)’라고 한다.
물론 ‘비교우위’가 모두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불행해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에 허덕이거나 남에게 기죽지 않으려 과도한 타인 의식에 사로잡혀 분수를 저버리면 행복은커녕 ‘눈물의 씨앗’이 되어서다.
‘행복은 무지개와 같아서 좇으면 좇을수록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도 없고, 강제로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도 없다는 의미다. 출세한다고, 돈이 많다고 해서 곧 행복 순위로 연결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행복은 자존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슬며시 다가온다. 학창시절 늦은 밤 도서관을 나서며 하늘의 별을 볼 때, 최선을 다한 수험생이 합격증을 받아들 때, 피곤한 몸으로 귀가했을 때 반겨주는 가족들의 맑은 목소리를 들을 때… 한여름 삼복더위에 땀이 쏙 들어가는 시원한 바람을 쏘이는, 그런 때처럼.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행복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또 그는 행복을 ‘summum bonum’이라 불렀는데, ‘최고의 선’이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행복이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며 인간이 행복하려면 원하는 것과 바라는 것을 구분하며 살아야 한다고도 했다. 가끔 우리는 착각한다. 노력 없이 그저 바라는 것과, 노력을 기울여 진정으로 얻고자 원하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 말처럼, 자신의 모든 노력을 기울여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행복이라면, 먼저 자신이 원하는 것부터 알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