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다
/문정영
오지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이제야 깊게 들린다
어릴 적 내 고추가 조금만 능청거려도,
조금만 밥을 잘 먹어도 오지다 하시던 할머니가
크게 아프지 않고 돌아가신 것도 오지다는 그 말을
이 세상에 부렸기 때문일 것이다
텃밭의 풀들이 웃자라 감나무의 밑동을 휘감을 때에도
저것들 오지게 잘도 자라네 하시면서,
느긋하게 풀 자라는 모습 지켜보시던,
그것이 이 땅에 나서 살다가 다시 가는 날들의 표상인 것을 아는 것처럼
오지다는 말 누누이 나누어 주고 가신 할머니
오늘은 내가 오지다고 내 아이들의 등 두드려주어도 아이들 무덤덤한 표정인 것은,
내 오지다는 말 속에는 무성한 풀숲의 감나무를 바라보던
할머니의 느긋함이 부족한 탓은 아닌지,
할머니의 오지다는 말 다시 들어보고 싶은 날들이다
- 문정영 시집 ‘잉크’ / 시산맥사
‘오지다’의 사전적 의미는 ‘허술한 데가 없이 매우 야무지고 실속이 있다’이다. 어릴 땐 어른들로부터 심심찮게 들었는데 언제부터인지 귀한 말이 되었다. 오지다는 말 듣는 날은 왠지 힘이 솟고 뿌듯했다. 그 시절 어른들은 좋은 말이라도 남용하지 않았으며, 부족한 행위에 대해 개선되기를 기다려주었으며, 마침내 좋은 결과가 보일 때 용기를 북돋아주고 더 잘하라는 의미의 기분 좋은 말들을 쏟아냈다. 아름다운 말은 사라지지 않게 자주 사용해야 한다. 일상에서 쓰다보면 글 속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아울러 자연스레 세대를 아우르는 풍조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우리의 좋은 말들이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위 시를 읽으며 오지다는 말을 되뇌어 본다. /이미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