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했는데 현실이 되었다. 새누리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친박계 핵심인 이정현 대표를 선출했다. 이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워왔던 정치인이다. 박 대통령과 함께 한 12년 인연을 빼놓고서는 그의 정치이력을 설명할 수 없다. 전당대회에 나선 후보들마다 친박이 아니라며 발을 빼는 분위기에서도 그는 변함없이 박근혜 마케팅을 했다. 선출 직후 수락연설에서는 “모두가 손가락질할 때 저 같은 사람을 발탁해 준 박 대통령께 저는 감사함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박 대통령에 대한 이 대표의 마음은 각별하다. 그러하기에 그는 위기의식을 가진 친박표가 결집하는 중심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의 복심’이라는 그의 정치적 정체성은 한계이기도 하다. 과연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된 여당 대표로서의 리더십이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짐을 안고 있다. 마침 새누리당 새 지도부는 친박 일색으로 구성되었다. 선출된 최고위원 4명 가운데 3명이 친박이고, 최고위원회의 멤버 9명 가운데 8명이 친박이다. 역대 최강의 친박 지도부가 구성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청와대가 새누리당이 일심동체가 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새누리당의 이러한 선택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쳐질까 하는 점이다. 민심은 지난 4·13 총선에서 친박을 심판했다. 박 대통령의 소통부재 국정운영, 친박계의 막장 공천이 민심이반을 가져왔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의 당심(黨心)은 그같은 민심에 개의치 않고 친박의 손을 들어주었다. 어찌보면 당심이 민심에 맞서는 모습을 연출했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선거에서 심판받았다고 해서 당권을 잡아서는 안된다는 법은 없다. 민심이 등돌린 원인을 뼈아프게 반성하고 다시 태어나기 위한 혁신의 노력을 기울였다면 얘기는 다르다. 그러나 문제는 친박계가 그동안 보여온 모습에서 진정한 반성이나 혁신의 태도를 읽을 수 없었다는 점에 있다. 친박계는 책임을 지고 뒤로 물러설 생각을 하는 성찰의 태도를 보이는 대신, 어떻게든 다시 당권을 잡으려는 데만 집착했다. 결국 친박계는 총선 참패 이후 아무 것도 달라진 것 없이, 단지 얼굴만 바뀐 채로 당권을 다시 쥐게 된 것이다.
이제 새누리당은 어떻게 될 것인가. 친박계는 당내 기반의 우위를 발판으로 당권을 잡는데는 성공했지만, 새누리당의 앞날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당장 당내 통합이 가능할지가 의문이다. 이 대표는 “이제 어떤 계파도 존재할 수 없다”고 선언했지만, 그 가능성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새 지도부가 무조건적으로 박 대통령의 대변인이 되고, 더욱이 친박 중심의 정권재창출을 시도하는 길을 간다면 비박계의 반발은 심각할 것이다. 민심보다 ‘박심’(朴心)을 우선하는 것이 대선 필패의 길임을 아는 비박계는 그같은 노선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며, 대선후보 선출을 둘러싼 갈등이 빚어질 경우 여권의 분열과 정계개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야당들과의 관계도 한층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새 지도부가 현안마다 대통령의 편을 들고 나선다면 여소야대 국회는 갈등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여당이 여소야대의 민의를 겸허히 수용하면서 양보할 것은 양보하는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박 대통령이 그것을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여당이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대야 관계는 악화될 것이고, 정국의 만성적인 경색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친박 지도부를 선택한 이번 전당대회가 새누리당에게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더 두고봐야 한다. 내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분명한 사실은, 당심이 민심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번 심판을 했는데도 달라지는 것 없는 여당이 된다면 민심의 심판은 더 추상같이 나타날 것이다. ‘도로 친박당’이 되어버렸다는 세간의 시선 앞에서 이정현 대표 체제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