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새소리
/백석
처마 끝에 명태明太를 말린다
명태明太는 꽁꽁 얼었다
명태明太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明太다
문門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 백석 시집(고형진 엮음) ‘정본 백석 시집’
절망에 가득 찬 시간을 보내던 늦가을 이른 아침, 길바닥에 뒤집힌 채 떨어진 잠자리 한 마리를 본 적이 있다. 아직 죽지 않았는지 찬 이슬에 젖은 다리를 가느다랗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언뜻 ‘내 처지와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고는 뒤돌아가서 길 한 쪽에 바르게 놓아주었다. 그 내용으로 시를 한 편 쓰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멧새소리’에서는 화자(시적 주체)가 꽁꽁 언 명태를 보고 자신도 가슴에 고드름이 달릴 만큼 얼었다고 말한다. 틀림없이 그도 극심한 절망 속에서 버둥거리고 있었으리라. 그런데 살아가면서 한두 번쯤 절망에 빠지지 않는 사람은 없다. 혹은 파괴된 생활난에 혹은 처참하게 떨어진 자존심에 혹은 비참한 관계들로 인해 한 여름인데도 꽁꽁 얼기도 한다. 그러나 明太를 생각하기로 하자. 明太라는 한자어의 뜻을 생각하기로 하자. 아무것도 모르는 멧새가 울어 서러움을 북돋는다 할지라도, 明太를 생각하며 문턱을 ‘밝게’ 넘을 준비를 하자. /김명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