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빗소리
/손택수
탁구공 튀는 소리다
스님들도 목탁대신
탁구를 칠 때가 다 있네
절집 처마 아래 앉아 비를 긋는 동안
함께 온 귀머거리 여자는
영문을 모른 채 그저 숫저운
미소만, 미소만 보이는데
通度라면 인도까지 갈까
저 빗소리, 내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 머나먼 서역까지 이를까
흙이 아프지 말라고,
흙의 연한 살이 다치지 말라고
여자는 처마 아래 조약돌을 가지런히
깔아주고 있는데, 그
위에서 마구
튀어오르는 빗방울,
저 빗방울
하늘과 땅이 주고받아 치는 탁구공 소리다
- 손택수 시집 ‘호랑이 발자국’
재미있는 빗소리다. 땅을 박차고 튀어 오르는 빗방울이 탁구공이라니, 그것도 하늘과 땅이 주고받아 치는 소리라니, 절집 처마 아래 두 남녀가 비를 피하고 있다. 화자인 남자는 짐짓 ‘스님들도 목탁대신 탁구를 칠 때가 다 있네’라며 한 공간에 들어찬 어색함을 덜어보려 한다. 함께 온 귀머거리 여자는 영문을 모른 채 그저 숫저운 미소만 보이고, ‘通度라면 인도까지 갈까,’ ‘내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 머나먼 서역까지 이를까,’ 남자는 생각이 많다. 여자는 혹여 흙이 상처받을까 조약돌을 가지런히 그 위에 깔고, 모든 욕망을 모조리 비우는, 정숙해야 하는 절간, 비는 왜 이리 내리면서 탁구공처럼 튀어 오르는가, 올여름 읽는 이 시 한 편으로 장마가 지루하지 않겠다. 비를 보는 눈이 새로워지겠다.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