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65세 이상 노인 인구(1024만 명)가 전체의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공식 진입했다.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2023년 기준 83.5세다. 누구나 최소 20여 년의 노후를 대비해야 하는 시대에 잘 사는 것(웰빙) 못지않게 잘 늙는 것(웰에이징), 잘 죽는 일(웰다잉)에 관심을 기울여야 마땅한 시대가 도래했다. 초고령사회에 1인 가구가 급속도로 늘어가면서 웰다잉은 이제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국가사회의 주요 정책 테마로 등장해 있다.
중환자의 여명(餘命)을 평안하게 마치도록 돕는, 삶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하기 위한 제도 중의 핵심은 호스피스다. 신체적·정서적 고통을 완화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돌봄 서비스를 뜻한다. 지난 2016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호스피스는 수요 대비 공급 부족, 부족한 정책적 지원 등 문제점이 여전하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품위 있게 마무리하고자 하는 이들은 급속히 늘고 있다. 지난 5월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팀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력 존엄사 및 웰다잉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86%는 ‘죽음에 관한 결정을 스스로 하고 싶다’고 답했다. 또 ‘말기 환자가 고통 없이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응답에 무려 93%가 공감을 보이는 등 호스피스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매우 높아졌다.
이처럼 높은 인식에도 불구하고 실제 호스피스 제도 이용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중앙호스피스센터가 지난 4월 발표한 ‘2024 국가 호스피스·완화의료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호스피스 병상 수는 1815개에 불과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은 호스피스 이용이 가능한 질환으로 암·후천성면역결핍증·만성폐쇄성 호흡기질환·만성호흡부전·만성간경화로 국한하고 있다.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호스피스 이용자 2만 4318명 중 비암성 질환 이용 환자는 고작 108명에 그치는 수준이다.
이같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여생을 존엄하게 마무리하길 원하는 국민이 늘어나면서 호스피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다. 세태의 흐름에 맞게 제도 기반 및 정책적 지원 강화가 절실한 대목이다. 웰다잉은 이제 ‘국민 삶의 질’과 직결돼 있다. ‘잘 사는 것’ 못지않게 ‘잘 늙는 것’, ‘잘 죽는 것’이 일생의 소중한 과정으로 엄연히 여겨지는 상황이다.
올해로 13회를 맞는 ‘호스피스의 날’을 맞아 일부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눈에 띈다. 경기 안산시 상록수·단원보건소는 호스피스 인식 개선 캠페인을 전개했다. 아주대학교 권역호스피스센터 안내·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사전연명 결정제도 홍보 등을 진행했다. 시흥시는 ‘시흥시 호스피스·완화의료 지원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고, 인천시 서구에서도 ‘서구 웰다잉 문화조성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이 제정됐다.
웰다잉은 연명의료 여부·장기 기증·장례 방식 등 죽음과 관련된 중요한 결정을 본인이 직접 할 수 있도록 하는 ‘자기 결정권 존중’이 핵심이다. 불필요한 연명치료 대신 편안하게 떠날 수 있도록 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등 ‘존엄한 임종’도 중요한 요소다. 죽음 이후 가족의 혼란과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미리 충분히 대화하고 재산 분배·장례 절차 등을 합의해 두는 ‘가족과의 소통’도 중요하다. 종교적·정서적 준비를 통해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삶을 정리하는 ‘마음의 준비’ 과정도 포함된다.
국민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삶을 마감하는 과정을 돕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국가사회가 적극적인 자세로 웰다잉을 위한 제도와 정책을 주도해나가야 할 것이다. 죽음은 ‘삶’ 바깥에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