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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중세 수도원 건축에 대한 사색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독자들에게 묵시록의 기운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곧 종말이 도래할 거라고 성토하는 노인들, 정말 종말이 도래하기라도 했는지 연달아 일어나는 흉흉한 사건들, 교황권과 국왕권력이 대치하고 있는 극적인 상황 등은 그때를 말세라 여기기에 충분했던 증거들로 보인다. 무엇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도원 건축물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수도원은 오스트리아에 위치하고 있는 멜크 수도원을 모티브 삼았다. 멜크 수도원의 가장 큰 건축물은 소설의 배경인 시점보다 몇 세기 뒤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절벽 위에 높은 성벽을 쌓아올린 점이나, 수도원이 교회와 집회소, 숙사, 본관 등으로 이루어진 점은 소설 속 구조와 매우 흡사하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젊은 수도사 아드소는 절벽 아래에서 바라본 수도원의 인상을 묘사하고 있는데, 본관의 압도적인 크기와 그 석벽이 찌를 듯이 하늘로 솟아있는 모습은 그날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젊은이의 마음을 압도하기 충분했다고 증언한다. 수도원 본관은 장서관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서책들을 필사하다 다른 책들도 열어보고 싶은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던 젊은 수도사들은 장서관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금서들을 향해 손을 뻗지만 의문의 죽음을 당하곤 한다. 연쇄살인의 수사를 맡은 윌리엄 수도사와 그의 제자 아드소는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장서관의 미로 속으로 들어가는데 이곳은 사람의 정신을 홀리는 향이 피워져 있고, 환각을 일으키는 여러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곳곳에는 괴기한 형태의 짐승들이 그러져 있었다.

소설의 배경이 13세기이니 소설에 등장하는 수도원은 그보다 조금 앞서 지어졌을 테고, 그렇다면 로마네스크 양식을 따르고 있었을 것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을 띠고 있는 교회들은 실제로도 그 지역 전체를 압도할 만한 위엄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교황의 권력이 통제 불가한 수준에 이르고 그 부도덕함과 부패함 역시 극에 달하지만, 교회권력이 처음부터 그렇게 강성했던 것은 아니었다. 로마가 멸망한 후 한동안 유럽지역은 무법천지와도 같은 상태로 널브러져 있었는데, 교회권력이 체계가 잡히기 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봉건제도 역시 견고하게 정착하기 전이었다. 교회는 무법자들의 수탈과 범죄를 막아내고, 또 그들에게 위협을 가하기 위해서라도 위엄있는 형태를 띨 필요가 있었다. 물론 글을 읽지 못하는 성도들에게 건축 양식 그 자체로 신의 권위를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이 가장 중요했다. 베네딕트회는 무질서한 세상에서 일종의 질서와 체계를 잡기위한 강령들을 선구적으로 발표했던 수도회였고, 이후에는 가장 중요한 교파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수도원 역시 베네딕트회에 속한 곳이었다.

그 당시 수도원 밖에서는 무자비한 이단 심판자들에 의한 살육이 빈번하게 자행되고 있었으며, 본래 진리를 더듬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었던 수도사들은 모순적이고 비인간적이며 잔인한 시대에서 무엇을 추구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깊이 고뇌하고 있었다. 교황권력에 반기를 들고 청빈한 삶을 기치로 내건 신생 교파가 우후죽순 생겨나지만 이단으로 몰리며 처형당하곤 했다.

곧 도래할 것만 같았던 종말은 아직 오지 않았고, 교회권력을 앞세운 살육도 멈추었으며, 덕분에 후대인들은 그 시간들을 차분히 되짚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모순적인 시대에서 수도원에서의 삶을 업으로 받아들였던 이들에 대해서도 사유해 본다. 인간에게 강박증을 선사했던 그 숨막힐 것 같은 웅장함 속에서도 일말의 향수를 느낄 수가 있다. 비록 수도원들은 부패하였고 앞다투어 부를 축적하였지만 언제나 대의명분을 ‘부’가 아닌 ‘참된 진리’에서 찾았다. 젊고 아름다운 수도사들은 엄격한 규율 내에서 지성을 추구하며 살았으며, 그것만으로도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마음에 고뇌가 찾아오면 한밤중에라도 성인들의 조각들이 놓인 교회당 안으로 뛰어 들어갈 수 있었고, 혹 그곳에 먼저 들어와 기도를 올리고 있는 연로한 선배를 만나면 그 자리에서 조용히 고해를 요청할 수도 있었다. 고해가 끝나면 따뜻한 손길과 미소의 화답을 얻기도 했다. 수도원 내의 어느 곳을 보아도 사유가 가능했다. 그 모든 것이 속세의 모순이었으며 동시에 영적인 세계의 입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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