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외면
/복효근
비를 그으려 나뭇가지에 날아든 새가
나뭇잎 뒤에 매달려 비를 긋는 나비를 작은 나뭇잎으로만 여기고
나비 쪽을 외면하는
늦은 오후
- 복효근 시집 ‘따뜻한 외면’ / 실천문학사
비 그치기 기다리며 벌레들의 어두운 길을 유심히 들여다본 적 있다. 나뭇잎을 두드리는 빗방울의 리듬에 귀 기울여도 보았다. 손 우물에 비를 담아보았다. 평소에는 인사도 없던 사람과 어쩌다 같이 비를 긋게 되어 더듬더듬 말 섞기도 했다. 비에 함께 갇혀있다는 공감만으로 마음이 촉촉해지기 때문일까. 늦은 오후, 한 나무에 비를 피하려고 날아든 새와 나비. 이때만큼은 이 두 미물도 같은 처지다. 무조건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관계만은 아니다. 이 순간만큼은 새에게도 어떤 마음이 있는 것이다. 이때만큼은 따뜻한 시치미를 떼고 있다.
/김은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