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향
겨울에
정오 무렵에
굴다리 옆 기사식당에서
출입문을 등지고 앉아
검붉은 핏덩이를
묵묵히 삼키는
저 구부정한 등
슬픔은 등골에 죄다 모여 있다
- 시화 / 경기 민예총 시화전 / 2016년 6월
사람의 등은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표정을 갖고 있다. 신기하게도 얼굴을 마주할 때보다 등을 보면 그 사람의 처한 상황과 기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때가 있다. 표정은 임의로 바꿀 수 있지만 등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 바람이 세게 불면 우리는 엉겁결에 돌아서서 걷는다. 얼굴보다는 등으로 바람을 맞는 것이다. 온갖 풍상을 맞서서 겪어왔을 등, 출입문을 등지고 앉아 묵묵히 선짓국을 먹는 구부정한 등에서 고단한 삶의 쓸쓸함을 포착한 시인이 슬픔은 등골에 죄다 모여 있다는 말에 어떻게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최기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