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 내린 비는 가을비 치고는 많이 내린 비다.
김장밭에는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나 건축 현장이나 가을걷이가 한창인 농작물에는 반갑지 않은 비였다. 더군다나 어제 일요일에는 초등학교 모교 교정에서 해마다 펼쳐지는 동문회 행사인 한마음 잔치가 있는 날이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석 달 열흘 가물다가도 비가 내린다면 하루만 참지 한다더니 이번 비가 내게는 그런 비가 되었다.
벼를 베기로 미리 정해진 날에서 밀려 다시 잡은 날이 하필이면 일기 예보에서 비가 내린다는 날이다. 많은 농사도 아니고 먹을 식량이나 한다며 운동삼아 짓는 논농사는 천여 평에 불과하다 그러다보니 모내기부터 수확까지 농기계를 모두 갖출 수는 없고 농기계를 소유한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수익을 바란다면 더 더욱이 할일이 아니다. 나누어 먹는 재미에 짓는 농사라 즐거운 마음으로 해오지만 아쉬움이 있을 때도 간혹 있다.
올 가을에는 건물 수리를 시작해놓고 보니 더욱 어수선하다. 말이 수리이지 새 건물 짓는 것보다 신경도 더 써야하고 힘도 더 드는 것 같다. 변변치 않은 농사지만 농사일과 공사 현장에서의 감독 겸 잡부 역할을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다 보니 많이 지친 내 모습도 자주 보게 되고 날씨마저 훼방을 놓을 때는 속상함과 함께 체념이 찾아온다.
그래 먹는 거 덜먹고, 공사야 좀 늦으면 어때….
다행히 비가 내리기 전인 토요일 새벽에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콘크리트 타설을 하고 오전 11시쯤에는 벼 베기를 하였다. 잠시 쉴 틈은 고사하고 정신없이 진행된 일이지만 천만다행이었다. 예년보다 적은 수확이라도 비 오기 전에 수확을 마쳤으니 다행이었고 비가 내리면 할 수 없는 콘크리트 타설도 새벽에 서둘러 했으니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오늘 내일까지만 비가 참아주면 더없이 좋을 듯 싶은데 일기예보를 연실 들여다보아도 비는 온다 하고 그것도 폭우가 예보가 되니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저녁 늦게 비닐을 가져다 덮어놓고 일요일 새벽에 현장에 들려보니 참아준 비 덕분에 콘크리트 양생이 잘되어 가고 있었고 비가 와도 피해는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몰라 비설거지를 하는데 일곱시쯤 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제는 동문회 행사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동문회 행사장으로 향하는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이렇게 비가 오면 실내에서 행사를 진행하겠지만 동문들의 참석이 저조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을 하고 보니 기우였다. 우천을 대비해 준비는 완벽하게 되어 있었고 비가 오는데다 이른 시간임에도 동문들의 참여 또한 많았으며 모교 교정에는 온종일 건강하고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 넘쳐났다.
하루만 참아주지 하는 비는 온종일 내리더니 일요일 밤이 되니 예보대로 폭우로 쏟아진다. 비 내리는 소리에 연실 뒤척이다 아침 일곱시쯤 일어나 하늘을 보니 어둡기는 하나 비는 그칠 듯 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현장을 둘러보니 별 이상 없이 현장은 잘 보전이 되어있다. 다행이었다. 요 며칠은 분주함으로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게 지났기에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책상 앞에서 생각을 정리하는데 밝은 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기에 창밖을 보니 호명산 위 구름 속에서 햇님이 인사를 한다. 반가움에 나도 인사를 하니 하늘이 점점 열리는 듯 구름들이 물러서며 파란 하늘을 보여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