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높고 들판은 화려하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어느 한 곳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누렇게 익어 고개 숙인 나락이며 발갛게 익어가는 감 그리고 바람이 빗어 내린 듯 정갈한 갈대까지 가을의 정취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요즘 들어 자주내린 가을비로 축축해진 틈을 타 채마밭도 한결 풍성하다. 배추는 통이 들어차기 시작했고 더디게 성장하던 콩도 제법 통통해졌다. 호박이 꽉 찬 속을 담금질하는 틈을 타 여기저기서 수확을 서두르는 손길로 들녘이 분주하다.
우리 작목반도 오늘 고구마 수확을 했다. 어제 비가 내려 고구마를 캘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다행히 땅이 질지 않아 작업을 했다. 포크레인으로 들썩여 꺼내 놓으면 고구마 수염을 정리하여 박스에 담는 일이다. 기계가 투입되고 작업하는 인원이 열 명이나 되니 쉬울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속도가 나지 않았다. 밤고구마인데 줄기가 무성하고 수염이 많아서 작업이 더뎠고 일하는 시간보다 참 먹는 시간이 더 많았다. 남자들이 뭔 수다가 그리 많은지 막걸리 한 잔 먹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해도 많이 짧아졌고 오후에 작업을 시작한 만큼 서둘러야 오늘내로 끝낼 수 있는데 태평하기만 하다.
그래도 그 모습과 우정이 정겹다. 한 친구가 땅 천 평방미터를 친구들에게 내주고 농사를 짓자고 했다. 필요한 작물을 심어서 함께 수확하자는 제의를 했고 열 명의 친구들이 작목반을 구성해서 고구마와 땅콩 그리고 배추와 고추 등 밭작물을 심었다. 주말이면 모여서 풀도 뽑고 막걸리도 먹으며 우정을 나눈다. 작업이 있는 날이면 서로서로 간식을 준비해 온다. 말하지 않아도 챙겨오는 먹을거리로 늘 풍성하다. 조금 별난 것이 있으면 작목반을 집합시키고 대부분의 친구들이 한달음에 달려온다.
농사는 핑계고 나이 들어가면서 얼굴한번이라도 더 보고 즐겁게 살자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육십을 목전에 두고 건강하고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이다. 서로 욕심내지 않고 챙겨주고 염려해주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바닷가에서 해물 사왔다고 부르고 산에 가면 버섯 따왔다고 부르고 심심하니 삼겹살이나 구워먹자고 부르고, 날 궂으니 빈대떡이나 굽자고 부른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이지만 작목반을 함께 하면서 이렇게 더 가까워졌다.
작물 중 가장 많이 심은 것이 고구마다. 고구마는 열 줄을 심어서 한 사람이 한 줄 정도 수확할 수 있게 했다. 말이 한 줄이지 이랑이 길어서 꽤 많은 양이다. 올 여름 가뭄과 폭염치고는 고구마가 제법 잘 들어서 수확이 쏠쏠하다. 겨우내 먹어도 다 못 먹을 양이다. 어떤 놈은 아기 주먹 만 하고 어떤 놈은 어른 팔뚝만큼 굵고 길다. 한 줄기에 묵직하도록 고구마를 매달고 땅 위로 올라오는 놈이 있는가 하면 양심도 없이 줄기만 한 무더기 매달고 나오는 놈도 있다.
한날한시에 같은 밭에 심은 고구마도 이렇게 양도 모양도 크기도 다른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사람살이나 식물들이나 참 오묘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루에 다 끝내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어둡기 전에 작업이 끝났다. 수확한 고구마를 분배하고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행복했다. 무엇보다 땅을 내준 친구에게 감사했다. 멍석을 펴 준 덕분에 열 명의 친구들이 어울려 한 판 재미나게 놀았다. 누군가의 배려가 큰 행복과 기쁨을 준다. 힘든 작업으로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