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날에 더 참담하게 만나자
/오민석
누구는
절반의 희망과
절반의 절망을 말하지만
지금 할 일은
참혹한 시간 속으로 더 들어가는 것
애인들은 등을 돌리고
꽃들은 마침내 졌다
지금 할 일은
믿음, 희망, 미래, 이런 단어들을
잠시 버리는 것
더 혹독하게 살의 냄새를 맡는 것
유령들과 작별하고
염통의 지도를 다시 읽는 것
아, 또 다시 삶에 속은 자는
지게를 지고 다시 생계를 향해 가네
지금은 더 참혹하게 무너질 때
알몸의 비극과 결혼할 때
손쉬운 작별들과 작별할 때
그러니 벗들,
꽃피는 봄날에
더 참담하게 만나자
- 오민석 시집 ‘그리운 명륜여인숙’ / 2015 / 시인동네
시인의 시대는 늘 암울하다. 지진과 전쟁, 가난과 절망, 배신과 억압의 수레바퀴만이 시인의 시대를 장식한다. 돌이켜 보면 세상은 언제나 봄에서 출발했지만 어느덧 봄을 놓치고 여름을 허비한 후 가을을 지나 겨울의 문턱에서야 다시 그 봄을 그리워한다. 지금의 세상은 9할의 낙심자들이 더욱 혹독하게 썩어가는 자신의 살 냄새를 맡는 시간, 도무지 보이지 않는 믿음, 희망, 미래 이런 것들을 낙엽지듯 다 버리고서야 제 삶의 지게가 비로소 가벼워진다는 것. 아, 그 가엾은 슬픔을 꽃으로 피워내는 것이 시인이다. 이제 우리는 시인을 따라 알몸의 비극과 하나 되어 마침내 참담의 끝을 지나 다시 꽃 피는 봄날을 그리워하자. 그 봄이 지금보다 더 참담하더라도 꽃피는 봄날을 노래하자.
/김윤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