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
/정재분
맨날 꼴찌야
담 너머를 봐
꽃이 가버리잖아
첨벙거리며 피던 꽃들이 진 지가 벌써야
지금은 철쭉이 있는 자리가 수다스럽고
늑장부리는 오동도 보랏빛을 머금고
방향을 팡팡 터뜨려
내 그랬잖아
해마다 가을이면 주렁주렁
열매를 매달았으면서
취하지 않아도 붉게 여물었으면서
새색시 치마폭에 한 줌 던져지는
의미로 쪼그라들어도
봄을 완성하는 방점
새순을 보여줘
- 정재분 시집 ‘그대를 듣는다’ / 종려나무
대추나무는 유난히도 잎을 늦게 틔운다. 그야말로 꽃들이 다 지고 저마다 열매의 방향을 팡팡 터뜨리고 있을 때 새의 부리같은 잎을 넌지시 내미는 것이다. 그 잎새! 애를 태운만큼 얼마나 반짝거리는지. 사랑스럽고 귀한 티를 내는지. 대추나무 이파리의 도도함은 나무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인다. 그렇게 때늦은 감탄을 연발하다 잠시 계절을 잊는 사이 느림보 대추나무는 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서있는 것이다. 출발은 늦었지만 도착은 늦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풍성한 열매를 매달고 새색시처럼 서있는 것이다. 그러니 늦은 봄날 대추나무의 새순을 보았다면 당신은 그해 봄의 완성을 보았다 해도 무방하리라.
/이미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