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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중한이라는 말이 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중에도 짬짬이 틈이 있게 마련이다. 올 여름은 살인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덥기도 했지만 바쁘기도 했다. 숨이 막히는 더위에 불 앞에서 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벌써 유리창너머 보이는 햇살이 따뜻해 보인다. 이렇게 햇살이 좋아지면 고구마가 제 맛을 낸다. 아마 연중 가장 맛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금 한가한 틈에 밖을 보면서 왈칵 눈물이 솟을 만큼 친구가 그리워진다.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들과도 왕래가 뜸한 처지에 갑자기 보고 싶다고 하면 뜬금없이 들리기도 하겠지만 어린 시절처럼 댓돌위에 나란히 신발을 벗어놓고 저녁나절 지는 해가 잠시 엉덩이를 걸친 툇마루에서 한 김 나간 고구마를 먹으며 깔깔거리고 싶어진다. 가을걷이를 하면서 어른들이 집을 비우고 아이들은 할머니가 계신 집으로 모이게 된다.

할머니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을 어떻게 아셨는지 주전부리를 내오셨다. 그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이 고구마였고 요즘처럼 봉지를 씌우지 않아 때깔부터 거칠고 알도 크지 않은 사과를 한 알씩 주시곤 하셨다. 누구랄 것도 없이 와삭 거리는 소리를 내며 한 입 베어 물고 바라보면 볼록한 양볼에 저절로 웃음이 나오다 어느 한 아이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고 모든 시선이 그 아이를 향했다. 흔들리던 이가 튕그러지는 순간이었다.

그 시절은 단순히 이를 뽑기 위해 치과를 가는 일은 드물고 치과는 무서운 곳으로 인식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이가 흔들려도 숨기다가 덧니가 나기도 했고 언니나 동생이 부모님께 일러 억지로 빼기도 했다. 무명실을 흔들리는 이에 걸고 살짝 당기면 별로 아프지도 않고 빼고 그렇게 빠진 이를 지붕위로 던지고 나서 홀가분함을 느끼고 나면 다음부터는 별 두려움 없이 이를 뺐다. 까마귀가 새 이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카톡 알림음이 울리고 예쁜 신랑신부의 사진이 올라온다. 나란히 냇물을 건너고 고무줄을 끊어가던 친구가 작은아들 결혼이라며 청첩을 보냈다. 모두들 만나고 싶었지만 부득이 봉투만 전달하고 저녁 늦게 사진을 보니 철없이 놀던 시절 그 친구들의 부모님의 얼굴이 서로 어깨를 기대고 하나 같이 푸근한 표정으로 서 있다. 성장한 자식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려 떠나보내는 마음이 허전하기도 하련만 어찌된 영문인지 예전의 우리 부모님 세대와는 사뭇 다르다. 자식을 빼앗기는 게 아니라 얻는 것이라는 말들도 하고 또 무거운 짐을 벗는 홀가분한 기분이라 시원섭섭하다는 말도 한다. 가끔 친구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결혼 소식이 날아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참석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친구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혼자 떨어진 것 같은 소외감마저 든다. 물론 친구들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텃구렁이라느니 돈만 밝힌다느니 하며 놀린다. 그러면서 이제 건강도 돌볼 겸 일도 줄이고 시간 내서 함께 어울리자고 한다.

돌아오는 주말에 친구들 모임이 있는 날이다. 그 날은 제발 하루 쉬면서 같이 가자며 만일 내가 안 나오면 우리 집 앞에서 머리에 빨간 띠 두르고 시위한다고 으름장이니 코흘리개 시절 돌아가면서 풍선껌 씹던 친구들이 그립고 고맙다. 그래 이 가을 억새꽃처럼 우리도 그렇게 어울려보자, 우리의 어린 시절을 닮은 아들딸들이 떠난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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