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下弦)
/이현서
밤이면 내 몸속에 풀여치 한 마리 산다
층계 밑 구석진 곳에서 여린 날개 비비는 소리
가늘고 고운 울림으로 방 한 칸을 들이는 모양이다
긴 더듬이로 달빛을 찍어 문풍지를 바르고
외풍이 스미는 틈 사이엔
여문 추억을 꼭꼭 채워 넣는다
슬픔이 저장된 시린 악보를 타고 뼛속까지 스미는 한기
네게 닿을 듯 닿지 않는 긴 울음이
휘적휘적 밤의 허리를 휘감는다
참을 수 없는 허공의 무게를 견딘 날개가
풀섶에 내린 이슬에 젖곤 했다
찌- 찌르르 풀여치 울음소리 어둠을 타전하고
몇 번의 안부를 묻던 꽃향기 짙은 기억들
맨몸으로 이별의 하중을 가까스로 견딜 무렵
오래 함구하던 슬픔 위로 달이 무너진다
긴 기도처럼 저물어가는 가을 밤, 삭막한 도시 아파트 화단 풀밭에서도 풀벌레 소리가 무성하다. 사위어 가는 모든 것들을 돌아보며 자신을 성찰하기도 하고, 삶의 길목마다 만났던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끝내 닿을 수 없었던 사랑이나 낙엽냄새처럼 되살아나는 기억들이 더 선명해 지는, 슬픈 영혼을 가진 모든 존재들에게 따뜻한 눈 맞춤을 하고 싶어지는, 가을이다.
/박병두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