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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구칼럼]울며 겨자 먹기

 

하지 않아도 생활에 별 지장이 없는 일을 외압이나 그 무언가에 의해 억지로 하게 될 때 ‘울며 겨자 먹기’로 했다고 말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을 때만 하면서도 넉넉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다. 그러나 자신을 둘러싼 환경은 녹록치 않다. 아무리 지상낙원 같은 곳에서 사는 자연인이라고 할지라도 썩지 않을 평생 먹을 식량을 축적해 놓지 않은 한은 눈비 오고 추운 날, 아픈 날에도 일을 해야만 한다.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일이기 때문에 이런 일은 울며 겨자 먹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중학생이 학원가기 싫은데 부모의 강압에 못 이겨 가야만 할 때 울며 겨자 먹기라고 한다. 학원에 안가면 좋은 대학 못가고 좋은 대학 못가면 성인이 된 후 생존에 위협이 온다는 등식이 완전 성립한다면 울며 겨자 먹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있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밥값을 내거나 선물을 하고 심부름을 해야 하는 일들은 퍽 줄어들 것 같다.

이 법이 시행되던 지난 9월 28일 어느 대학에서 교수님이 수업하시는데 드시라고 어느 학생이 캔 커피 하나를 교탁 위에 올려놓은 것을 교수가 마시다가 고발당한 첫 사례가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발자가 익명이었기 때문에 무효가 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동안 파파라치들의 눈부신 활약으로 인해 불량시민들이 습관적으로 해오던 교통위반, 쓰레기 투척 같은 행위는 줄었다고 한다. 시민의식이 높아져서 불법행위가 감소되었다면 선진국이 되어가는 것이지만 파파라치들 때문에 줄어들었다면 퍽 불행한 일이다. 김영란법을 위반하는지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란파라치’ 양성학원이 융성하고 있다고 한다. 남녀노소 막론하고 파파라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틈틈이 아르바이트로 부수입을 올리기 위해, 혹은 원하는 직장에 취업이 잘 안 되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시민들의 눈길은 그다지 곱지 않다. 이들에게 내가 고발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도 있지만, 파파라치는 남을 고발하여 수익을 챙기는 비열한 돈벌이라는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다. 필요악 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듯하다. 처음 파파라치가 되고자 결심할 때 이들의 심경도 착잡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이런 일을 시작했겠느냐며 자신 있게 자신의 직업이 파파라치라고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왕 시작한 일이니 자긍심을 스스로 고양하기도 한다. 이들 중에는 전문가가 되어 특종기사라도 하나 건지는 것이 희망인 사람도 있다. 김영란법도 란파라치들의 활약에 힘입어 한국사회에 만연된 윤리, 도덕불감증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한편 사제지간, 오랜 우정, 측은지심과 같은 감성적인 인간관계까지 법적인 잣대로 측정해서 더 개인주의화된 사회로 변질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있다. 밥값을 지불하는 사람은 울며 겨자 먹기로 지불하는 것인지에 대해 본인이 잘 알고 있으며, 대접 받는 사람도 상대방이 울며 겨자 먹기로 지불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잘 알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이런 방식을 묵인하거나 이용하면서 사회가 굴러왔다.

얼마 전 김영란 전 대법관이 신문인터뷰에서 더치페이가 좋지 않으냐고 반문한적 있다. 정말 그럴까? 더치페이가 모든 인간관계에서 좋기만 할까? 처음부터 그런 문화 속에서 성장하고 생활해오고 있는 서양인들은 별 문제가 없겠으나 서로 번갈아가면서 상부상조해오고 있는 한국문화 속에서 기성세대에게 더치페이는 친구관계마저 서먹하게 만드는 퍽 어색한 지불방식이 아닐 수 없다. 젊은 세대는 더치페이가 이미 일상화 되었다고 하니 김영란법을 익히고 실행하는데 기성세대만큼 정서의 혼란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 가지 시행착오도 거치면서 과도기를 지나 점차 이 법이 정착이 되면 울며 겨자 먹기도, 부정부패, 정경유착, 청탁도 조금은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를 해 본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뒷거래가 만연해질 가능성도 크다는 점이다. 의식을 바꾸지 않는 한은 란파란치들도 경·검찰도 파악할 수 없는 또 다른 지능적인 울며 겨자 먹기는 더 극성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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