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기도문
/박주택
나뭇잎 떨어지는 날에는 집에 있겠습니다
쓸쓸히 집에 남아 도저히 밤이라면
허공에 눈동자를 박겠습니다
하여 밤을 노래할 것 아니겠습니까
여름은 위대했습니다 가을 또한 못지 않았으니
겨울마저 위대하다면 찾지 않는 집에
햇살이 빛나고 이것이 생의 곡절이어
웃음이 웃음이 아니라면
그저 웃으며
이렇게 무릎을 꿇고
두 손에 바친 눈알을 가을에게 드리겠습니다
- 박주택 시집 ‘시간의 동공’ / 문학과 지성사
내 몸을 죽여 가는 화살촉으로 날아가고 싶었던 시인(시인의 말)은, 떨어지는 나뭇잎과도 같이 쓸쓸한 날 그 외로운 밤을 노래하기 위해 허공에 눈동자를 박고 집에 있겠다고 한다. 그의 눈동자는 어떤 눈동자일까. 그 눈동자는 겨울마저 위대한 집으로 만드는 고독의 눈동자, 기도의 눈동자이다. 쓸쓸한 밤을 지새우며 가을을 노래하고 그 가을로 해서 겨울마저 빛날 수 있다면, 춥고 텅 비었던 겨울도 여름과 가을 못지않은 햇살로 빛날 것이다. 웃음이 웃음이 아니라 해도 지나온 생의 곡절이어니 그저 웃을 것이다. 불면의 밤, 무릎 꿇고 허공을 향해 들렸던 눈동자를 가을에게 드리겠다고 한다. 허공에 붉은 단풍 가득하다. /김은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