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는 원래 유럽에서 크고 강한 나라였다. 그러나 영국과 필요 없는 전쟁을 일으켜 7년간 소모전을 벌이다 패전하여 나라가 쇠약하여진데다 독일과의 분쟁까지 일어나, 나라의 비옥한 땅은 모두 빼앗기고 유틀란트 황무지를 포함한 쓸모없는 땅만 남았다. 나라 안에는 전쟁고아와 과부, 상이군인들만 남는 지경이 되었다. 나라가 그렇게 피폐하여지자 늘어나는 것은 두 가지였다. 다툼과 도박이었다. 희망을 잃은 국민들이 싸움판, 술판, 도박판으로 빠져 들었다.
그러한 때에 선각자 그룬트비히는 뜨거운 가슴으로 구호를 외쳤다.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 그는 교육과 농업에서 나라의 살 길을 찾으려 하였다. 교육 중에서도 청년교육이다. 교육을 통해 젊은이들의 혼을 깨우쳐 그들이 황무지를 개척하고 농업을 일으키게 하려 하였다. 그의 뜻은 단순하고 소박하였다. “기독교 신앙으로 무장된 젊은이들이 조국 덴마크를 일으키고 영양이 풍부한 양질의 식품을 만들어 세계 각국에 공급하는 것은, 인류 전체에 봉사하는 덴마크인들의 사명이다. 이것이 농업국 덴마크의 기본정신이다.” 그룬트비히는 농민교육, 청년교육이 민족갱생의 초석임을 확신하고 국민교육을 전개하였다. 이것이 덴마크 부흥의 첫 출발이었다.
그룬트비히의 열변에 감동을 받은 크리스텐 콜이 국민교육을 실천하였다. 크리스텐 콜은 전직 초등학교 교사였으나 학생들의 혼을 죽이는 교육에 염증을 느껴 교사직을 사임하고 수년간 방황하다, 그룬트비히 목사의 설교에 감동받고 국민교육에 헌신하였다. 그는 먼저 버려진 시골의 물레방앗간을 빌려 청소년들의 혼을 깨우는 교육을 시작하였다. 인근 마을에 학생 모집 광고를 돌리고는 학생 15명만 보내주기를 간구하였다. 그러나 겨우 2명만 지원하였다. 그는 낙심치 않고 노력했다. 그러자 개학날 이웃마을 청년 13명이 마차 한 대를 타고 교정으로 들어섰다. 이것이 덴마크 국민정신을 깨우친 국민고등학교의 시작이었다.